반짝수집단, 인천을 함께 걷던 한 달의 기록 _ 김영서



한 달이라는 시간이 이렇게 빨리 지나갈 줄 몰랐다. 반짝수집단이라는 이름처럼, 우리가 함께한 모든 순간이 진짜 반짝거리며 흘러갔다.
작가님들이랑 인천 곳곳을 누비면서 찍고, 걷고, 먹고, 떠들고, 그냥 ‘살아있다’는 기분을 계속 받았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동인천. 오래된 건물들, 낡은 간판들, 시간이 걸터앉아 있는 골목들. 우리는 그 사이사이를 쉬지 않고 걸었다. 빛이 예쁘면 바로 멈춰 서서 사진 찍고, 골목 벽에 기대서 웃고, 그냥 우연히 눈에 들어온 풍경도 놓치지 않고 담았다. 그 순간마다 “아 이거 진짜 잘 나올 것 같다” 하면서 서로 감탄했고, 찍힌 사진 속 우린 진짜 영화 속 인물 같았다. LP바에 갔던 날도 잊을 수 없다. 바늘이 턱—하고 올라가고, 딱 맞는 지점에 내려앉으면서 시작되는 그 특유의 아날로그 소리. 조명이 어둑해서 얼굴 절반은 그림자였는데, 그 그림자마저 분위기로 느껴졌던 시간.  음악이 흘러가고 우리는 각자 자기 리듬대로 쉬다가 또 이야기하고,  괜히 센치해지다가도 갑자기 웃음 터지고. 그 모든 게 필름 같은 질감으로 시간에 남았다. 보드게임을 했던 날들은 반대로 텐션이 미친 듯이 올라갔다. 누가 이기나 지기나 상관없이 소리 지르고 웃고 속고 속이고, 그렇게 정신없이 놀다가도 사진 찍자는 말에 바로 포즈 잡는 우리 너무 웃겼다. 근데 그 과몰입한 표정마저 귀엽고 소중했다.  어느 날은 그냥 놀이터에 갔다. 어른인데도 아무렇지 않게 미끄럼틀 타고 그네 타고, 철봉에 앉아서 사진 찍고, 폴라로이드로 연속 셔터 치듯 찍고. 괜히 아무런 계획도 없던 순간이 제일 자유롭고 반짝였다. 놀이터라는 공간이 그냥 배경이 아니라, 우릴 더 솔직하게 만들어주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폴라로이드. 정말 이 한 달의 상징 같은 존재였다. 순간을 ‘찍고 끝’이 아니라, 바로 손에 쥐어지는 종이 한 장으로 만들어준다는 게 너무 좋았다. 필름이 나오면서 서서히 색이 올라오고, 나중에 보면 그게 또 완전히 다른 감정으로 되살아난다. 그렇게 쌓인 폴라들은 어느새 한 묶음이 되었고, 그 안에는 우리가 웃고 떠들던 시간들이 다 들어 있다. 흐릿한 것도 있고 흔들린 것도 있는데, 그조차도 이 한 달의 자연스러움이라 더 맘에 든다.

사람들도 참 좋았다. 한 달밖에 안 같이 있었는데 오래 알고 지낸 사람들처럼 편했고, 서로의 사진을 찍어주고 찍히면서 이상하게 친밀함이 금방 생겼다. 누가 찍어줘도 분위기가 다 다르게 담기는 것도 재밌었고, 필터도 스타일도 말투도 다 다르지만 그게 또 반짝수집단만의 색이 되었다. 돌아보면, 우리는 인천이라는 도시를 따라다녔던 게 아니라 우리가 가는 곳마다 인천을 다시 만들어가고 있었던 것 같다. 우리가 걸은 길, 우리가 웃었던 장소, 우리가 찍어둔 풍경들이 모여 이 한 달을 ‘우리의 인천’으로 바꿨다.

이 프로젝트가 끝나는 게 조금 아쉬울 정도로, 매 순간이 기록할 가치가 있는 시간이었고, 사진보다 더 빛나는 순간들이 너무 많았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이런 집단 또 생기면 아무 고민도 없이 바로 참여할 거다. 그만큼 소중하고 충만했던 한 달이었다.





반짝수집단 후기 _ 황선빈 



내게 있어서 작가는 너무 아득해서 질투도 안날정도로 눈부신 멋을 품은 사람들이다. 그런 작가들이 좋아서 그들 주변에서 몇년을 기웃거려왔다. 오롯하게 수용받는 입장에 서서.  어쩌다 연이 닿은 작가들과  모종의 활동을 함께 한 적은 꽤 있지만, 금번처럼 거의 완벽하게 그들과 동렬에 서서 같은 보폭의 걸음을 걷고 같은 방식의 호흡을 내쉰 경험은 처음이다. 덕분에 더 좋아졌다, 작가들이. 다른 무엇보다 가장 소중한 건 기억이다. 헤아리기 힘든 숫자의 좋은 기억들을 선물받았다. 그래서 너무나 감사한 마음이다.




멸종위기종 반짝살이 _ 위연정 



프롤로그


또다. 복숭아꽃과 함께 했던 2024 프로젝트에 대한 아쉬움이, 한 뼘조차 보이지 않는 깊고 컴컴한 해저로 가라 앉은 나를 기어이 수면 밖으로 끌어올렸다.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이 시대의 희망이었다면, 반짝수집단은 나를 다시 삶의 곁으로 쏘아올렸다. 당시 숨 쉬는 게 가장 큰 벌이자 동시에 상이던 나는 무슨 사치인가 싶어 스스로가 우스웠지만, 반짝수집단 지원서에 형편 없는 진심을 무기력하게 써냈다. 그게 될 줄은 몰랐지만, 순전히 운이 좋았다. 그리고 지금, 올해 가장 잘한 일은 ‘우리 반짝이들’이 된 거라고 단언할 만큼, 이 활동이 좋았다. 2025 복숭아꽃이 쏘아 올린 작은 반짝임은 내겐 생(生)이었다.



1회차 | 윤슬 : 놀이터와 폴라로이드


삶의 여러 이유로, 피아식별이 되지 않을 만큼 컴컴함 속에 있었다. 제자리에서 버둥대는 것조차 버거워 많은 걸 잊은 채로. 그 이유의 절반은 분명 가족이었다. 그리고 나머지 절반은 나였다. 내가 무모하게 시작했었던가. 누구나 진로 앞에 그렇듯, 나 역시 왜 영상인이 되어야 하는지 치열하게 고민하던 때가 있었는데. 그 기억마저 새까맣게 지워져 있었다. 나는 어떤 인간이었고, 왜 영상인이 되고 싶었지.
대부분의 사람은 자주 내게 냉정하다고 말했고, 몇몇은 종종 세상 가장 다정한 사람이라고 했다. 둘 다 맞는 말 같았다. 그렇다면 다중인격인 걸까. 온갖 아이러니와 모순으로 점철된 것만 같은 나의 존재에 환멸을 느끼던 무렵, 반짝수집단 1회차에 참여했다. 
차로 10분이면 도착하는 옆 동네 놀이터. 사실 복숭아꽃에 대한 팬심, 작년 프로젝트에서 제대로 마무리 짓지 못했던 나의 참여작 마무리에 대한 수치심이 아니었다면, 굳이 놀이터에 놀러 나올 형편은 아니었다. 그때까지 대부분 사적 관계에서 잠적한 상태였으므로. 다만, 공과 사의 경계에 모호하게 걸쳐 있는 복숭아꽃 사람들 곁으로는 쉽게 발걸음이 떼어졌다.  ‘일이라면 편할까.’ 작년처럼 마지막 회차에 전시가 있을 거라 착각했기에 내겐 적절했다. 집합해서 나머지 참석자들을 기다릴 때부터 마지막 전시작 테마도 정해두었다.  나의 테마는 반짝수집단 그리고, 그 안에서 포착할 ‘반짝’의 순간들.

집라인이 있는 놀이터로 우리를 초대한 고경표 기획자님은 그날의 큐레이터였다.  집라인을 중심으로 한 놀이터 소개와 충분히 주어진 자유 시간은, 작품과 작품을 감상할 여백이 주어진 전시실에 선 것 같았다. 그리고 지금 생각하면, 그 여백은 신의 한 수였다. 
독특하게 높은 지대에 형성된 알록달록 놀이터. 그 아래로는 멀찍이 재개발 중인 신도시의 모습과 처량한 원주물(原住物)들이 펼쳐진 채 있었다. 인위와 무위, 그 너머 작위와 부작위가 보였다. 그리고 다시 집라인까지 화면에 함께 담던 그때, 문득 떠올랐다. 예전에 내가 공유했던 장면을 보며, 흔들리던 목소리로 감동적이라고 감상 소감을 말해주던 사람. 그리고 그 장면에도 놀이터가 있었다.

‘와 나도 미끄럼틀 타고 싶다.’

도서관에 갔다가 나오는 길, 아이들 웃음소리에 무심코 쳐다본 곳의 놀이터. 폭신한 바닥, 어른인 나도 타고 싶은 기구들. 흥분한 목소리로 여름에는 워터파크로 변신도 한다며 떠드는 이야기에 웃음이 났다.  ‘세상 좋아졌다.’  외할머니께서 하시던 혼잣말, 그걸 쏙 빼닮은 생각 중인 나 자신이 우스웠다. 살아계셨으면 외할머니의 혼잣말이 늘어날 곳은 놀이터뿐만이 아니었다. 부스, 가림막, 전광판, 열선 벤치. 요즘은 정류장도 빠르게 진화 중이었으니까. 

‘사방이 할무니가 좋아졌다 하실 것들 천지네. 좋네.’

연출 의도와 맞는 로케 헌팅을 위해 돌아다니다가, 들른 어느 동네에 닿기 전까지 말이다.  거기엔 여전히 기울어진 버스 정류장 표지판 하나만 덜렁 있었다. 아파트 몇 개 단지를 커버할 만큼 넓은 면적의 그 동네 유일한 놀이터는, 우리 아파트 놀이터보다 규모가 작았고, 그네와 미끄럼틀 같은 고전적인 기구들이 전부였다. 빈 놀이터에 아이들 웃음소리는 없고, 차 소리만 가득했다. ‘이게 맞아?’  그리고 며칠 후, 공항철도에서 본 ‘격차 없이 모두가 행복한 도시 인천’이라는 광고는 나를 다시 그 놀이터로 데려갔다. 휴대전화보다는 전광판이 편할 어르신들이 구들장처럼 뜨끈한 벤치에서 기다리셨으면 했다. 생전 한 번도 다정하게 맘을 헤아려 본 적 없지만, 차가운 바다로 흩어진 할머니가 그리운 손주로서. 비록 미혼에 자식도 없고 모성애 같은 숭고한 감정은 헤아리기란 버겁지만, 조금 더 안전하고 재밌는 놀이터를 아이들 앞에 데려다 놓고 싶었다. 어떤 놀이터이든 관계없이 아이들은 티 없이 맑고 반짝이겠지만. 

그들의 부모나 자식은 생업으로 바빠 살펴보지 못했을 수도 있고, 말할 기운이 없었을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내겐, 이미 나의 프레임 안에 들어온 장면이었다. 

어쩌면 나조차도 무심코 지나쳐온 무심함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어 담은 장면. 그 안에도 놀이터가 있었다. 일상의 사소한 풍경 뒤에 숨은 것, 이상하게 난 그런 게 잘 보였다. 그런 관찰이 의미 있는 장면이 되던 순간, 영상인으로 가졌던 희망은 점점 열망으로 감정의 온도가 올랐었다. 전부 잊었던 것들이었다. 관찰한 세상의 장면을, 더 많은 사람과 공유하고 싶던 처음 그 설렘까지도 말이다. 
감정의 온도. 하지만 온도는 늘 변한다. 추억도 아무런 힘이 없다는데, 소환된 기억과 감정 따위가 이제 와서 다 무슨 소용이 있는 건지.

‘뭣이 중한디!’

때때로 뭣이 중요한지 모르는 사람이었다. 거의 삶의 모든 순간을 그냥 지나치지 못할 만큼 분별 없어지는.

“수고하셨습니다!!”
“그래 진짜 고생했다 들어가~!”

한여름, 온종일 트라이포드를 어깨에 지고 해변을 뛰어다닌 촬영이 끝났다. 하루 종일 달궈진 얼굴에 댈, 차가운 음료캔이 간절했다. 그러나 가방 속 반쯤 남은 생수병의 미지근한 물이 내겐 닿을 수 있는 유일한 오아시스였다. 여의도에서 장비 반납까지 마쳐야 일정이 끝나는 나로서는 편의점보다는 편의가 중요했다. 물론 그날은 일정이 종료된 이후에도 편의점 들를 시간이 없었지만.

‘오케이 반납은 끝났고~ 보자~! 여의도에서 영등포까지..!? 아..!’

다음 날 기다리는 콜타임을 위해선 막차를 놓치면 안 됐으니까. 다행히 미지근한 물이 새끼손가락 한마디만큼 남아 있었고, 아직 막차도 남아 있었다. 영등포에서 올라탄 일산행 좌석버스는 텅 비어 있었다. 기나긴 하루에서 내가 고를 수 있는 것들이라곤 그게 전부였지만, 월급만큼이나 반가운 빈 좌석에 내내 대하드라마였던 하루가 시트콤이 됐다.

‘도착하면 뭐부터 하지’

자리에 앉자마자 행복회로가 즉각적으로 돌아갔다.

‘씻고 편의점에 갈까, 편의점에 갔다가 씻을까’

멍든 어깨로 한껏 기댄 의자의 쿠션감에 안락함과 불편함이 뒤섞여, 막 전달되던 때였다. 

“어?”

나도 모르게 벨을 눌렀다. 반사적이었다. 차창 밖으로 어두운 골목에 쓰러진 사람이, 하필 눈에들어왔기 때문이었다. 

‘아 야간 할증…! 오늘 번 돈 절반은 택시비로 쓰겠네 또.’

이미 내 발은 골목으로 뛰어들어가고 있었다. 거긴 남자 선배들도 꺼린다는 골목이었다. 두고 가면 그에게 벌어질 수많은 일들이 너무 빨리 스쳤다. 내 월급통장과 택시비도. 막차에서 내려 골목으로 달려가던 찰나였다. 

‘이, 뭐, 아닌데? 이렇게 잽싸다고? 난 굼뜬데?’

똑딱이, 폴라로이드, 휴대폰 다시 똑딱이 카메라. 기억의 연쇄 작용으로 바쁜 머리만큼이나 내 굼뜬 손도 정신없이 카메라를 바꿔가며 찍었다.

“와 잘 찍었다.”

내가 찍은 폴라로이드 사진을 건네받고 활짝 웃는 단원을 보자, 갑자기 내 눈앞에 있던 모든 것들이 블러 처리가 됐다. 그녀가 보는 폴라로이드 사진만 포커스가 맞춰졌다. 

- 아 그거? 귀엽게 잘 만들었지! 가지고 갔냐?
- 응 드디어 이 귀여운 걸 준다! 열심히 만들었는데~
- 오~ 좋네! 야, 근데 나는 사실 그걸 주는 게 좀 그렇다?
- 왜? 나 또 너무 오지랖 부리냐?
- 좀 아깝잖아. 넌 정성 들여서 만든 건데 모를 거 아냐. 받을 땐 좋을지 몰라도 결국 버릴 텐데.
- 난 또 뭐라고. 내 계획은 안 아깝고? 상관없어. 야, 귀하게 여겨달라는 거 아닌데, 버리면 어때. 모셔두라고 주냐? 이렇게 더운데 얼마나 힘들겠냐. 이거 받고 잠깐 기분 좋으면, 난 그걸로 끝!
- 그래 그럼 됐지! 근데 지금 상황에서, 너도 참 너다. 누가 누굴 위로해?

친구의 말도 반은 맞았다. 친구와 통화하다 차오르던 눈물에 핸들에 있던 손을 급하게 들어 훔쳐내며 당황할 만큼, 나는 녹록지 않은 여름을 보내고 있었으니까. 뭐, 그런 여름이었으니까. 

‘감정에 따라 바꿀 거면, 굳이 왜 힘들게 계획을 해 도대체.’

계획을 못 지키면 나는 스스로에게 칭찬스티커를 줄 수 없었다. 그 스티커는 나를 굴릴 연료였다. 게다가 내 기분이나 처지가 그렇다고 해서 봄부터 만들고 계획했던 것들을 날리는 건, 그걸 준비한 나의 봄날을 그저 허비한 시간으로 바꾸는 거나 다를 바 없었다. 시간 낭비.
폴라로이드 형태의 포토 카드. 그거는 내가 힘든 여름을 맞기 한참 전부터, 그러니까 봄 내내 고민하다가 머리를 쥐어짜서 디자인하고, 미리 제작까지 마친 위문편지였다. 검문소를 지날 때마다 마음이 쓰였었다. 영하의 냉동창고 안에서도, 끓어오른 아스팔트도, 땡볕의 해변에서도 난 온갖 인상을 쓰며 어깨에 트라이포드를 지고 뛰었었다. 반듯한 표정과 칼각의 경례. 기합이 잔뜩 들어간 씩씩한 목소리. 여름엔 여름이라서, 겨울엔 겨울이라서. 너무 덥고, 너무 춥고. 자신의 재능으로 헌신하고 있는 해병대 장병들에게 내가 가진 재능으로 보답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과연 그럴 만한 재능이 내게 있는지는 별론으로 하더라도. 내 기분이나 상황 때문에 주지 않기에는, 내가 고민하고 만든 그 시간이 아까웠고, 습하고 무더운 혹서기는 볕이 너무 따가웠다.

‘게다가 초콜릿 다 녹을 텐데?’

겨울까지 놔뒀다가 빛바랜 카드를 주고 싶지도 않았다. 내 상황이나 문제는 그 계획에 어떤 변수도 아니었다. 애초에 감정 따라 바뀌는 것 따위가 어떻게 계획일 수 있느냐는 생각. 게다가 감정을 지연하는 것에 재능이 있는 편이었다. 아무렇지 않다고 생각하고 하면, 그 잠깐은 아무렇지 않은 게 된다. 물론 그런다고 그 감정이 사라지진 않지만, 미뤄둘 수 있었다. 친구는 모르는 비밀이지만, 내게는 감정을 선물 상자를 풀듯 풀었다가 넣었다가 하는 요술이 있었다.

“안 주셔도 됩니다!”
“어 그건 아는데, 그냥 고마워서요. 제가 여기 너무 자주 와서 힘드시죠? 너무 미안해요!”
“어 아닙니다!! 감사합니다!”

보람. 고마워하며 수줍은 듯 받아 들던 그 군인의 얼굴, 또 몇 시간 뒤 경례를 해주던 어느 군인의 실루엣까지. 고마워하는 그들에게, 외려 내가 더 고마웠던 여름날. 어떻게 보면 여름밤 막차도 같은 맥락이었다. 컴컴한 골목에 누운 사람을 찾아낸 건 관찰력이었지만, 막차에서 내린 건 오지랖. 주제 파악보다는 상황 파악이 먼저고, 소갈딱지보다는 오지랖이 넓은.

‘자기가 가진 재능으로 사람들을 위로하고 기쁘게 하는 것에 쓴다는 건 얼마나 황홀한 일인 걸까?’

뭐, 내게 그런 황홀한 고백이 도착할 수 있을지는, 별론으로 하더라도. 무능과 무력감, 그걸 현상하고 있던 내게, 폴라로이드가 상기시켜 준 것들. 관찰력이 좋고 오지랖이 넓은 나의 소소한 장점들, 그걸 영상에서 펼쳐보고 싶다던 포부. 뭣이 중요한지 모르는 나였지만, 그건 내게 분명 중요한 것들이었다. 그때 내가 군인들에게 폴라로이드로 건넨 걱정과 감사가, 혼란스럽던 미래의 내게 더 큰 응원으로 되돌아온 것이었다.

1회차가 끝난 토요일 저녁, 분가한 동생과 오랜만에 저녁을 먹으며 나는 잔뜩 들떠서 집라인 있는 놀이터를 발견했다며 가자고 떠들었다. 내내 귓등으로 듣던 동생의 한마디에 한참을 창밖만 바라봐야 했지만.

“누나 그거 우리 아파트에도 있는데 못 봤어?”
“어 그래? 못 봤는데?”

몇 시간 동안 놀이터에서 발견한 내 장점이자, 왜 영상인이 되어야만 하는지 구구절절 기억을 더듬으며 찾은 이유가 관찰력이었는데. 등잔 밑이 어두운 건지, 눈이 어두워진 건지. 마음의 문을 닫고 지내는 동안 나는 얼마나 무뎌지고 녹슨 걸까. 이상하게도 나는 그 점이 묘하게 자극적이었다. 남은 반짝수집단 회차 동안 녹슬고 무뎌진 날을, 나를 다시 갈고 닦을 수 있을지. 기대에 차 유리창 너머 움직이는 바쁜 불빛들을 바라봤다. 


2회차 | 빛무리 : 카메라 전환 모드



유난히 긴 추석 연휴가 끝났다. 소래포구 공영주차장에서 2회차가 시작됐다. 정확히는 나 혼자서. 고민과 변덕이 내 발길을 집에 오래 묶어둔 탓이었다. 놀이터 이후로 강행 중이던 다이어트가 다시 수포로 돌아갔다. 추석 내내 주워 먹은 걸로 더 빵빵해진 볼. 달라진 건 볼살이나 체중만이 아니었다. 그새 찾았던 빛, 조금 더 떠 있을 용기까지 전부 사라졌다. 기껏 떠올랐는데, 부력을 잃은 걸까. 기어이 다시 해저로 가라앉았다. 드론을 띄우려던 그날의 계획마저도, 일기예보에 예고된 변덕스러운 날씨가 삼켜버렸다. 옅은 회색 하늘, 벽시계. 이따금 번갈아 보며 했던 나갈지 말지에 대한 고민은, 도착한 주차장에서도 이어졌다.

‘내가 여기에 어울리는 사람일까. 이렇게 여유를 부려도 될까.’

시동이 꺼진 차 안의 공기는 답답했다. 집에 돌아가는 건 또 매듭짓지 못하는 것이었다. 다시 아쉽고 엉성했던 작년 전시작이 떠올랐다. 차라리 일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이건 일이니까.  많이 늦었지만 큰 걱정은 없었다. 합류하면 되니까. 미리 공유됐던 이동 경로 계획을 봤다. 

‘마지막 지점에서 기다리지, 뭐.’

비가 예고된 흐린 날씨에도 소래습지생태공원에 사람이 꽤 많은 건 의외였다. 하늘이 무너지기라도 할 것처럼 죽상이던 나와는 달리, 사람들에겐 생기가 넘쳤다. 한껏 들뜬 얼굴, 웃음기 가득한 목소리로 함께 온 이들과 이야기를 주고받는 모습들. 거기서 곧 비가 쏟아질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보였다. 나만 다른 세상 사람인 건가 싶을 정도로. 그 풍경의 복작댐은 반짝수집단의 단체 대화방에도 들어 있었다. 예정대로 잘 진행 중임을 알 수 있는 글과 사진. 꽤 적극적이던 2 회차의 호스트는 큐레이터라기보다는 전시자에 가까웠다. 여백은 적었지만, 해석의 명확성은 올라가는. 세심하고 친절한 호스트가 준비한 음식 냄새는 휴대폰 너머로도 전해지는 것 같았다. 액정을 끄니 보이는 옅은 잿빛 하늘. 수집단의 낭만과 여유를 구경하니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선물. 내가 떨어져 있던 시간 속에서 찾은 반짝임. 합류 전까지 길 위에서 반짝임을 수집해 선물하고 싶어졌다.  놓치는 게 있을까 하는 조바심과 샅샅이 훑고 싶은 마음이, 가로지를 지름길보다는 합류 경로 중 가장 바깥길을 걷게 했다. 칠면초를 비롯한 염생식물이 갯골을 정원으로 만든 건 멋졌지만, 평소 다니던 강화도·교동도 포구들과 비슷하다며 눈을 돌릴 때였다. 도시에 둘러싸인 소래의 독특함. 멀찍이 산이 보이는 쪽, 또 멀찍이 아파트가 보이는 쪽, 산과 아파트가 함께 보이는 방향까지. 시대물 같다가, 광고물 같다가, 잃은 것 같다가, 빼앗은 것 같다가. 갯골 사이로 흐르는 빠른 물살은, 비가시적인 시간을 내게 가시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았다. 

센치함에서 차분함으로 감정의 결을 바꾼 건, 걷는 동안 내 프레임 속에 들어온 것들에 있었다. 손잡고 걷는 중년 부부, 왁자지껄한 초등학생 무리, 유모차 미는 신혼부부, 가라앉은 친구 목소리에 야단스럽게 위로하던 아주머니. 다양한 조합의 사람들. 새들도 그랬다. 혼자 노는 새, 함께 노는 새. 각자 다른 분위기 속 존재들을 지켜보는 건 나름 재미있는 일이었다. 혼자라 홀가분해 보이는 아주머니 옆모습에선 해방감이, 이어폰을 낀 채 고요하게 갯골만 바라보는 할아버지의 뒷모습에선 담담함이 느껴졌다. 어떤 할아버지는 사람들이 지날 때마다 애꿎은 입술을 힘주어 부딪혔다 펴기를 반복하며 갯골 방향을 두리번거렸다. 혼자 오신 게 멋쩍으신 걸까.

‘그러실 필요 없는데’

접어둔 오지랖이 괜히 또 꿈틀댔다. 서로 설레는 얼굴로 마주한 이들의 모습이, 혼자 멍하니 갯벌을 바라보는 사람의 뒷모습보다 더 멋지던가. 아니 그것보다, 애초에 내 프레임 안에 들어온 것 중에 소중하지 않은 것들이 있었던가. 전부, 그들이 거기 있어 줘서, 더 살아있었는데. 괜찮다는 마음을 전하는 방법으로, 나는 전방 백 미터에서 누가 봐도 셀카를 찍는 티가 나도록 셀카 찍는 시늉을 했다. 벌써 1 년 가까이 안 찍은 셀카, 프레임 안에 가득 찬 내 얼굴은 나 역시 입술을 야물딱지게 다물게 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마스크가 꽉 다문 입을 가렸다는 것. 하지만 눈빛이나 미간만으로도 알 수 있는 한껏 굳은 표정이 우스꽝스러워서 한숨 섞인 웃음이 터졌다. 한동안 내 거울 속에서 보이지 않던, 오랜만에 보는 웃는 눈이 낯설었다. 그 낯섦에 충동적으로 시늉이 아닌 진짜로 셀카를 찍었다. 마지막 내 표정은 거의 셀럽이었다.  멋쩍어하시던 할아버지는 주접스럽던 나를 한참 보시더니 안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사진을 찍기 시작하셨다. 그게 셀카였는지 풍경이었는지 모르겠다. 다만 내가 확실하게 본 건, 눈이 마주칠 때마다 더 주접스러워지는 나를 보다 허허 웃으며 한결 편안해진 할아버지의 얼굴이었다. 
멋쩍음이 지나간 자리에는 즐거움이 보였다. 할아버지의 공기를 바꾼 건 나의 주접이었을까, 할아버지와 눈이 마주칠 때마다 더 활짝 웃던 나의 능청스러움이었을까. 그 공기에 더 머물고 싶었지만, 사유지로 막힌 경로에 다시 돌아서 가려면 더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지름길이 있는 족욕장 방향으로 되돌아갈지 고민 끝에 또 바깥길을 택했다. 더 많은 걸 수집하고, 그중에 가장 반짝이는 것을 선물하고 싶었으니까. 길목에 공사 중 안내판이 있었지만, 그래도 샛길 하나쯤은 남겨두지 않았을까 싶어서 진입한 길. 맞은 편에서 사람들이 걸어올 때마다 되돌아오는 건지, 애초에 진행 방향이 반대인 건지 불안해지기 시작할 때쯤이었다. 원래도 세차던 바람이 더 거세게 불었다. 허공에 뜬 팔이 살짝 밀릴 정도로 거센 바람이었다. 그 길 위에 모든 것들이 흔들렸다. 그중에는 갈대와 물억새도 있었다. 갈대와 억새가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에 나는 걷다 서길 반복했다. 갈대는 칠면초와 더불어 염생식물이다. 
소래의 갯벌에 도착했을 때 애써 칠면초를 외면했는데, 갈대는 끝내 나를 겨울로 데려다 놨다. 강화의 겨울, 살갗을 에던 바람과 그걸 타고 들리던 스산한 갈대 소리가 들리던 그 곁으로. 간척사 아카이빙 작업 때였다.

“그래서 간척사에 대해 어떤 영상을 기획하고 계세요? 주제가 뭐예요?”
“아 주제는 간척사 그대로고, 정리된 자료만 따라갈 생각입니다. 제 사견은 전혀 없이요.”

자신만만한 목소리였다. 마침내 그런 꾀를 생각해 낸 내가 기특했기 때문이었다.

“그게 영상적으로 무슨 의미가 있죠?”
“역사물…이니까 사견이 개입되면 안 된다고 생각을 해서요.”
“그러니까 그게 영상적으로 무슨 의미가 있냐는 말을 묻고 싶어서요~”

차마 그 맑은 눈을 마주할 수 없어, 눈만 끔뻑거렸다. 웃는 얼굴, 다정한 말투. 하지만 정곡을 찔렀다. 자기 메시지가 없는 영상이 어떤 가치가 있냐는 맑은 눈 앞에서 나는 부끄러웠다. 맞는 말이었다. 역사물이라는 핑계 뒤에 숨으려던 수작이 들킨 것이다.  최초 간척에 대한 역사 영상 제작. 최초라는 그 두 글자는 분명 내게 찬사, 아니 적어도 긍정적으로 묘사하라는 무언의 압박 같았다. 하지만 ‘오늘날의 간척’에 대한 내 시선은 그 압박과는 정확히 대척점에 있을 때였다. 그런 나의 시선을 담는 영상이 최초라는 말의 기대를 잘 수행하기엔 부적절했다. 최초라는 의의를 내 시선에 담는 것. 왜곡도, 숨김도 없이 말할 만큼의 총알은 내게 없었다. 

무엇보다 제작 여건이 제작 전과 달랐다. 먼저 정리된 전문 스크립트 활용과 별도의 전문가 배정이 된단 말에, 단기 제작과 저예산이라는 제약을 감수하고 뛰어든 작업이었다. 하지만 그대로 쓸 수 없던 스크립트와 정리된 자료에 있는 오류, 전문가의 부재는 그야말로 막다른 길이었다. 복숭아꽃 프로젝트 참여와 진로에 쓸 시간으로만 계획했던 연말에 생긴 치명적 변수였다.

지름길을 잃고, 경로 밖의 길을 돌고 돌던 작년 겨울. 시간과 여력이 없어져 애꿎은 복숭아꽃이 펼친 작년 프로젝트 참여 과제였던 전시작은 엉성한 마무리를 했다. 알량한 계획과 판단에 희생된 내 전시작. 그래서 그 아카이빙 작업은 부끄러움이었다. 고지도·고서·수십 건의 학술지, 다른 학문의 논문까지 뒤져도 크게 진척이 없었다. 사흘 밤낮의 자료조사. 방 안의 공기만큼이나 답답했다. 여전히 나는 간척에 대한 가치를 모른 채, 책임감 하나로 밤낮 책상 앞에 묶여 있었다. 당장이라도 다 뒤집어엎기 전에 재밌는 게 필요했다. 시간의 압박과 재미의 균형, 거기서 합의한 최선. 내 당근책인 호기심.

‘아유, 아주 재~밌겠다, 재밌겠어… 뭐, 그래도 신기할 거니까.’

그게 내 최선의 재미였다. 잠이나 깰 겸 간척 기술에 관한 영상을 보고 있었다. 도대체 어떻게 만드는 건지나 보자며. 멍하니 틀어둔 영상 속 기술은 내가 생각하는 오늘날의 그것과 달랐다. 그 기술에서 옛사람들의 영리함과 공생 관계에 해가 되지 않는 적절함을 읽을 수 있었다. 간척의 가치판단을 고민하며 겉돌던 내게, 조선 시대 간척 방법과 한 간척 재료가 공생의 관점과 잣대의 정당성을 들여다보게 한 것이다. 복잡한 머릿속을 명료하게 만든 간척 재료는, 염생식물이었다. 내내 무거웠던 머리가 가벼워졌다.
무른 흙을 단단하게 해주는 천연 재료, 염생식물. 그건 트리거였다. 그 시대의 눈으로 본 간척. 평소 생각이라든가, 영상인이 된 이유가 모두 거기에 맞닿아 있었으므로. 작은 풀 하나로 바다가 땅이 되었고, 시대를 먹이고 살렸기 때문이었다. 그건 고려 강도 시기에 대한 나의 입장에도 좋은 근거가 되어줬다. 몽골 침입기 고려를 지킨 건 당시 지배층이 아닌 직접 바다를 메운 민초들이라는 생각. 역사에 이름은 남기지 못했지만, 그들이 남긴 바다 위에 땅은 기록보다 더 큰 유산인 것 같았다. 기록되지 않은 이들의 업적, 아니 그들이 강화에서 날 기다리고 있었다. 보일러 때문에 방안이 더워서였을까, 화상을 입은 것처럼 가슴이 화끈거렸다. 졸려서 감정이 취약해진 건지, 눈물이 터졌다.

‘어 안 돼, 주접이야! 울면 졸려!’

세수를 하고 창문을 열고, 그 뒤로는 그 책상에서의 일이 정확히 기억나지 않았다. 다만 눈물 덕에 깬 잠으로 나는 꾸역꾸역 기획서부터 촬영 공문에 첨부할 촬영 콘티까지 써갔다. 좌초된 채 있던 나의 기획에도 방향이 생긴 것이었다. 향토사학자와 관공서, 박물관, 주민들 취재도 이어갔다. 1 인 단기 제작에서 무리한 시간 투자는 그 자체만으로도 리스크가 컸다. 시간을 아끼려면 자본 투여가 필수적이었다. 하지만 예산 역시 기름값도 빠듯했다. 저예산 단기 제작에서 남은 선택지는 나를 갈아 넣는 것뿐이었다. 제작 포기를 고민하던 때와 다르게, 나는 점점 종일 강화도와 교동도를 떠다니며 땅과 바다를 파헤치는 것에 빠져 있었다. 강화의 겨울바람은 칼날같이 손등을 파고들었다. 강행군에 혹여 졸음운전이라도 할까 봐 열어둔 창문으로는 그 바람이 더 세졌다. 카메라와 운전대를 잡느라 노출된 손등이 터졌다. 그럴수록 나는 그 칼날 같은 것에 잠이 더 깼다. 바다를 간척으로 메우던 이들의 손들은 얼마나 고됐을지를 생각하면서. 최초 간척이나 천 년 전 바다가 오늘날 땅이 되었다는 거창한 말 뒤에 가려진, 그 땅 이면의 이야기를 전한다는 것. 그 사실에 잔뜩 들떠 강화의 시멘트길, 흙길을 걷는 건, 내겐 만날 수도 없는 그 시대 무명씨들에게 감사 인사를 건넬 기회였다. 악조건과 변수를 딛고 끝까지 완주할 힘. 

‘그건.. 그 겨울의 난, 그냥 힘든 게 아니라 너무 좋아하다 지친 거였어.’

옭아매던 의무도 책임감도 아닌 애정이었는데, 그게 왜 이제야 보인 걸까. 지름길은 빠르게 데려다주지만, 돌고 도는 길은 또 다른 걸 느껴보라며 내게 더 많은 걸 보여 줬는데. 소래 갯벌의 바깥길을 따라 많은 존재들을 지나치며 몇 시간 동안 했던 생각들을 되짚어 봤다. 내 프레임에 들어온 것들은 어떤 이유든 모두 소중했고, 때론 애틋했다. 엉겁결이었지만 오랜만에 찍었던 셀카도 떠올랐다. 결국 그건, 거기 서 있던 내게도 해당하는 거였는데. 눈앞에 또다시 막힌 길이 보였다. 그리고 2 회차 끝 무렵까지 소식 없는 내게 어딘지 묻는 연락이 왔다. 내 위치를 찍어 공유하기로 했는데, 오는 동안 꽉 채운 휴대폰 용량에 스크린 캡처도 불가능했다. 지울 수 없어 놔둔 것들 중 삭제 대상을 너무 소심하게 추리는 바람에, 전원을 3번이나 껐다 켰다. 위치 공유와 합류 장소 확인 후 걷는 동안 하늘은 어느새 더 짙은 잿빛이 되어 있었다. 비가 쏟아질 것 같은 하늘. 멀리 소래까지 와서 수집단을 사진에 못 담고 돌아가는 건 아쉽지만, 모두가 빗속에 있을 필요가 있나.

‘예정 코스 중 수집단이 마저 걷지 못한 경로를 내가 걷는 건 어떨까.’

물론 살뜰히 챙기는 복숭아꽃 사람들에게 합류 없는 해산이라는 나의 제안이, 단번에 받아들여지진 않았다. 그런데 그 ‘잠깐의 보류’와 ‘쓰이는 마음’에 씌기라도 한 건지 잿빛 하늘도 대수롭지 않은 듯했다. 맑은 하늘도 선글라스를 쓰면 잿빛인데 뭐 어떤가 싶은 들뜸, 어쩌면 가벼운 설렘. 문득 지우지 못하던 사진과 영상을 그 자리에서 삭제하고 싶어졌다. 껄렁하게 짝다리를 짚은 채 내가 확보한 용량은 대략 2GB 남짓. 가벼워진 용량이 그 길 위의 것들을 담는 걸 수월하게 했다. 
다시 걷는 도중 괴이함에 눈을 의심했다.  허공에서 매달린 채 바람에 부대끼는 나뭇잎, 잘 보니 끝에 언뜻 거미줄이 보였다. 떨어지던 나뭇잎의 희귀한 비행을 보며, 다른 나뭇잎보다 먼저 끝난 나뭇잎의 생을 생각했다. 그런데 정말 생이 끝난 걸까? 공중비행이 끝나고 흙으로 돌아가는 과정도 그의 일생이지 않을까? 주위를 찍는 것만 몰두하던 나는 셀프 촬영으로 카메라 모드를 바꿨다. 그건 누구를 위한 시늉도 아니었고, 어떤 의무나 책임 때문도 아니었다. 그냥 풍경 속에서 나를 담고 싶었다. 몇 컷의 사진과 동영상을 촬영하며 미완의 코스를 걷는 동안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되돌아가는 게 오늘 내 운명인가?’

아쉬움에 걸음 한 전망대조차 폐쇄되어 들어가 본 실버 카페. 노인 일자리 사업으로 생긴 시니어 카페라 애초에 전문성에 큰 기대는 없었다. 종일 공복 상태이던 위를 달랠 겸 따뜻한 라떼를 기다리며 카페를 둘러봤다. 어르신들이 운영해서 음료가 늦을 수 있다는 안내문, 얼마나 자주 닦으신 건지 유난히 반짝반짝한 테이블. 유동 인구가 많은 곳에서, 이렇게 빛나게 관리하려면 얼마큼의 정성이 필요한 걸까. 감탄에 둘러보던 눈길이 관리 잘된 유리창에 멈췄다. 거기에는 그렇게 적혀 있었다.

‘모든 날이 행복하기를’

누군가의 행복을 빌어주는 건, 얼마나 예쁜 마음인 걸까. 모든 날이 행복할 수 있나 하는 실현 가능성은 별론으로 하더라도. 주문한 라떼를 마시려 뚜껑을 열자, 기대도 안 한 라떼 아트가 있었다.  넘치기 직전까지 가득 담긴 라떼 위, 잔뜩 부풀어 오른 고운 폼은 쉽게 무너지지 않고 단단했다. 입자가 작은 폼일수록 라떼의 맛이 고소하댔는데. 기대치 않았던 것들이 산재했다. 라떼를 건네주던 환한 얼굴과, 다정하게 건네주신 인사까지. 카페에서 나오니, 모자를 두드리는 빗방울이 더 굵어졌다. 그리곤 카페에서 내려다봤던 폐염전을 다시 바라봤다. 수탈의 공간이었던 폐염전. 그것들을 한참이나 나뭇잎 밑에 숨어서 바라보고 다시 마주한 생태의 보고인 소래 갯골. 차가운 은회색 빛이 반짝였다. 좀 전까지 머물던 카페의 반짝반짝했던 나무 테이블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 테이블 위로 생태 공원을 지나는 동안 봤던 잘생긴 나무들이 겹쳤다. 거미줄에 걸렸던 나뭇잎까지.
나는 그동안 얼마나 수많은 나뭇잎의 생을 어림잡고 판단해 왔을까. 나뭇잎의 생을 재단하던 뻔한 시선, 실버 카페나 어르신들이 만드는 커피라는 것에만 꽂혀 커피 맛은 기대하지도 않던 그 정체된 시선. 그 시선에 나의 어떤 것들을, 그저 타성에 젖은 채 맡겨왔을까? 점점 굵어지는 빗줄기 속으로 걸어 들어가서, 비 오는 소래의 갯골과 사람들이 쓴 우산을 찍었다. 그것들을 배경으로 빠져나오고 있는 나의 모습을 담은 영상까지. 운동화가 비에 젖는 걸 질색하던 평소의 나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주차 전에 매번 시트를 닦을 정도로 결벽이 있는 내게, 젖은 등이 시트에 닿아 시트가 젖는 건 분명 찝찝했다. 그런데 잔뜩 젖은 그 옷을 쥐어짜며 탄식 같은 웃음이 나왔다. 선루프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주차장에 앉아 어두워진 소래의 갯벌과 하늘. 소래를 처음 왔던 날은 몇 년 전 유난히 맑은 가을, 첫 드론 실습을 하던 날이었다.

‘그때의 나는, 참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촬영하다 보면, 해나 달에게서 감탄하게 되는 순간들이 있다. 그 순간 중에 빛무리가 있다. 주로 비가 오기 전, 일정한 온도와 습도를 갖춰야만 만날 수 있는 해와 달의 빛무리. 하지만 빛무리는 강렬하고 거대한 것에서만 나오지 않는다. 어두운 바닷속 아주 작은 존재, 야광충이 그것이다. 외부에서 어떤 자극이 오면 스스로 빛을 내는, 발광 플랑크톤. 1mm 남짓한 그 작은 존재들이 뿜는 신비한 푸른 빛은, 칠흑 같은 밤바다를 낭만으로 바꾼다. 물론 외부 자극이라는 트리거가 필요하지만, 결국 그들의 자력으로 만드는 빛.

‘지금의 나도 뭐 하나쯤은 할 수 있지 않을까?

어쩌면 반짝수집단으로 남은 몇 주 동안, 자극의 조건을 완성하는 마지막 한 조각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 첫 회차와 기시감이 들었다.



3회차 | 불꽃놀이 : LP바와 도둑들, 나의 해방일지

 

정신을 차리니 귓가에 5AM empanada with you 가 흐르고 있었다. 아니, 노래가 나와 정신이 들었다. 한참 보고 있던 TV 에 전기가 나갔다 들어온 때처럼. 영화 같은 전주에 의식이 돌아온 것이다. 분명 아파트를 나서며 에어팟을 귀에 꽂고 곡을 재생했는데, 꼭 음소거라도 됐던 것처럼. 하지만 음소거는 소리를 없애는 건데, 내게서 꺼져버린 건 비단 소리만이 아니었다. 아파트에서 지하철역까지 걸어갔고, 번쩍번쩍한 새 플랫폼에서부터 수많은 발길로 맨들맨들해진 플랫폼까지 순간이동을 한 것도 아닌데. 플랫폼은 그렇다 쳐도, 부평역의 그 긴 환승 구간을 어떻게 지나왔는지가 도무지 기억나지 않았다. 계속 플랫폼에 앉아 있었을 건데, 스크린도어 너머 풍경은 비로소 ‘페이드인’이 되는 것만 같았다.

‘몽유병도 아니고, 기면증도 아닌데.’  얼떨떨하게 주변을 둘러본 내 눈엔, 아무리 오랜만이라지만 부평역 플랫폼 안팎의 모든 것이 새삼스러웠다. 어수선하게 상황을 정리하는 동안 노래는 1 절의 끝을 향해가고 있었다. 가장 좋아하는 가사가 나오고 있었으니까. 

‘여름이 끝나지 않았다면, 너는 영원히 내 것이었을까.’

내게 여름의 다른 이름은 향수였다. 돌아가고 싶은 날들은 모두 여름에 있었으니까. 만약 여름이 지층이라면 지나온 여름날들을 켜켜이 쌓아 두고 싶을 정도로. 그래서 삶이 너무 추운 어느 날에 지층의 단면을 뚝 잘라 층위마다 기어 들어가서 화석이 된 그것들과 함께 누워 있고 싶을 정도로. 적어도 작년까진 말이다.
올해 여름 엄마는 심장에서 9kg 의 물을 빼내야 했다. 중환자실 면회도 번번이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가로막혔다. 얼굴 한 번 보질 못하고, 별 소득 없이 돌아온 차 안에서 차마 시동을 켜지 못했다. 이해할 수 없는 상황과 형체 모를 불안함, 걷잡을 수 없는 후회와 분노가 가라앉을 때까지 한참을 병원 주차장에 앉아 있었다. 살면서 내가 해왔던 잘못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쳤다. 엄마가 중환자실에 누워 계신 동안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상실에 대한 두려움이나 불안보다 더 힘든 건 무력감이었다. 느지막이 들어간 집에서 씻고 컴퓨터 앞에 앉았는데, 열어둔 방문 사이로 정수기 내부에서 얼음이 만들어져 떨어지는 소리가 유난히 더 컸다. 
가까스로 마친 작업에 렌더링을 걸고 기다리는데, 열어둔 창으로 차 소리가 잦아들 때쯤 개구리울음과 풀벌레 소리가 더 커졌다. 하지만 작게 틀어둔 TV 소리와 간간이 엄마가 주방을 오가는 소리, 냉장고 문을 여닫을 때마다 고무패킹이 닿는 소리, 정작 내가 듣고 싶은 그 작은 소리들은 들리지 않았다. 영상 출력을 마치고 도망치듯 집에서 나와 차에 올라타자마자 고일 새도 없이 눈물이 났다. 낭패였다. 주차장은 너무 밝고, 차의 방음도 형편없었다. 집 근처 공터도, 아라뱃길 주차장도, 어디에도 들키지 않고 마음껏 울 수 있는 곳이 없었다. 사람이 없는 곳을 다급하게 떠올리던 내게, 엄마랑 처음 가본 그 포구가 생각났다.
평소 계획되지 않은 행선지는 비효율적이라며 가지 않았지만, 들렀다 가고 싶단 엄마의 한마디에 짧은 고민과 함께 핸들을 꺾었던 곳. 운전에 서툰 내가 갈 수 있는 섬에서 우리 집과 가장 멀리 떨어진 창후항. 사람들이 모두 집으로 향한 빈 포구에 차를 세워두고 목 놓아 울었다. 아무리 쏟아내도 토해지지 않는 것 같던 슬픔을 게워냈다. 그렇게 며칠을 버티다가 더는 버티지 못하는 날이면, 밤마다 다시 먼 창후항에 가서 울었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퇴원 이후에도 슬픔에서 해방되지 못했다. 특히 곁을 주지 않으려 하는 그 냉랭함은 뜻밖이었다. 몇 주간의 노력에도 그 어떤 호응도 돌아오지 않았다. 벽을 마주 보고 말하는 게 더 낫겠다 싶을 정도로 의미 없이, 그렇게 여름은 끝을 향해 가고 있었다. 중환자실에 누운 엄마의 심장에서 빼냈던 건 정말 물뿐이었을까? 더 앙상해진 몸, 더 작아진 목소리.  퇴원 후 집에 돌아온 엄마에게선 삶의 의지나 애착을 가졌던 모든 것들이 호흡기를 통해 빠져나간 것 같았다. 그럴수록 치졸하게 나는 몇 년 간 엄마를 간호했던 일이 떠올랐다. 그건 한참도 더 된 일이었는데도.

“그때 내가 뭘 포기하고 엄마한테 매달렸는데, 어떻게 삶을 그렇게 쉽게 포기해! 대체 왜 그러는데!” 그렇게 화를 내고 기껏 도착한 곳이 또 다시 창후항이라니. 새까만 밤바다와 앉아 멍하니 건너편 섬을 바라보는데 눈물이 차올랐다. ‘내 수많은 밤들이 전부 여기 있었어...’  그때 난 보이지도 않는 신에게 매달려서 다시 태어나기라도 할 것처럼, 한 번만 더 내가 잘할 수 있는 기회를 주면 안 되겠냐고 절절하게 기도했는데. 추했다. "간사하다 진짜…"  정적뿐인 차 안에서 순식간에 튀어나온 혼잣말에 나는 정신이 번뜩 들어 탄식을 내뱉었다.  ‘잘한다며, 나 진짜 뭐 하냐... 신이 보면, 다시 얻은 기회로 넌 지금 뭐 하고 있냐고 하겠다.’ “하”  한숨 쉰다고 달라지는 건 없기에 어지럽게 널브러진 종잡을 수 없는 감정과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어떻게 할지부터 정리했다. 끝내 이해할 수 없는 일은 굳이 이해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인정하기로 했다. 마음껏 걱정하며 보듬을 수도, 그렇다고 힘껏 미워할 수도 없지만, 서운한 그 감정들의 실체를 구태여 밝힐 필요가 있나. 그래봤자 시간 낭비였다. 내 감정이나 마주한 상황이 가벼워서가 아니라, 당장 가장 중요한 것들이 뭔지 더 무겁게 와닿아서.

‘생존확률이 반반인데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게 뭐가 있어.’

어떻게 보면 그건 할 수 있는 게 없어 절망하던 내겐,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흔들릴 때마다 다시 떠올리고 다잡는 것까지도. 반반의 확률 그리고, 이유조차 알려주지 않는 그 냉대 앞에서, 그 어떤 것도 낙관적이지 않았지만 어떤 것도 비관할 수 없었다. 시간이 혼자 해결할 거라는 무모한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저 여름 동안 내가 할 수 있는 사소한 것들을 체크하며 우리의 일상을 회복해 나갔다. 유독 다정한 기억과 추억뿐인 여름에, 한 번도 가져본 적 없는 잔인함이었다. 한동안 여름에 관련된 것이라면 경기를 일으키며 피했고, 그건 노래도 마찬가지였다. 1 초부터 치고 나오는 전주를 듣고 3 초 안에 돌렸을 텐데. 오늘은 그게 되질 않았다. 아침부터 엄마와 아빠의 비서 역할에 충실하느라 진이 다 빠져서일까? 부지런히 움직였는데도 내 진료는 결국 1 시까지 버티다가 진료를 포기했다. 배다리 일대에서 주차가 가능할지 확신이 없기에 차를 집에 두고 올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배다리 헌책방 골목에서 김신과 지은탁이 서 있던 도깨비의 한 장면을 찾고 싶었는데. 

‘끝나기 전에는 도착하려나. ’ 2 회차가 생각나 초조해진 내게, 에어팟을 꽂지 않은 반대편 귓가로 플랫폼 가득 쩌렁쩌렁하게 열차 도착음이 울렸다. 올라탄 1 호선은 시간이 멈춘 것처럼, 변한 게 하나도 없어 보였다. ‘가만있어 보자. 지금 이런 장면엔… 이 음악이지.’ 자주 듣지 않던 플레이리스트까지 넘어가 노래를 바꾸니, 지하철 내부가 코닥 필름을 뒤집어쓴 것 같았다. 내게만 들리는 BGM 과 흔들리는 전철 손잡이, 사람들. 

'웃겨 진짜'

뿌듯함에 웃음이 터질 뻔한 걸 가까스로 참았다. 좀 전까지 숨 막히던 여름을 회상했으면서도 이런 사소한 것 하나에 집착하고 뿌듯해하는 건, 정말이지 엉뚱하지만 너무나 나다운 거였으니까. 남들은 관심 없는. 딱히 넘어가도 문제없는 사소한 것들에 집착하는 건 영상으로 전향하기 전에도 그랬다. 친구와 로맨틱한 드라마에 한참 빠져 꺅꺅거리며 흥이 오른 때였다. 

“근데 지금 이 장면에서 이 음악은 아니지 않냐?”
”뭐가 또? 그냥 대충 봐”
“아니 지금 스토리랑 분위기에 저 음악은 좀 그렇잖아. 그리고 장면도 야, 저게 뭐냐.”

다급하게 핸드폰을 집어 들고, 평소 멋진 곳을 발견할 때마다 찍어둔 것 중 하나를 친구 앞으로 들이밀었다. 

“봐봐 여기. 여기 같은 데를 어? 딱 이만큼만 보여주고, 그래야 감성이 더 살지.”
“그럼 네가 감독을 해~”
“그래야겠네!?”

둘은 갑자기 마주 보고 빵 터졌었다. 감독을 하라는 친구의 터무니없는 말에, 뻔뻔하게 응수하며 꾹 누르던 웃음이, 친구를 따라 같이 터졌다. 지금과 전혀 다른 분야를 꿈꾸던 그땐 상상도 못했다. 그래야겠다고 아무 생각 없이 받아치던 나의 그 농담이 진심이 될 거라고는. 주안역에서 문이 열리자 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졌다. 군데군데 남은 사람들의 모습이 백령도 해변에 앉아 있는 점박이물범들 같아 귀엽기도 하고, 촬영을 마치고 바라본 연평도 바다의 작은 ‘여’ 같기도 했다.  오석근 작가님으로부터 아직 3 회차 합류의 기회가 있음을 듣고, 자신만만하게 내린 동인천역. 중구청 앞 카페로 착각해서 개항장 방향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위치를 보내주신다고 할 때 말을 좀 들었으면 이럴 일이 없었을 텐데, 굳이 거절하던 내 머리통을 쥐어박고 싶었다. 

‘들어야 할 건 안 듣고’

3 회차는 합류에 성공했다. 놀이터 이후로 본 적 없어 어색하게 건넨 나의 인사에, 환한 웃음으로 답하던 사람들에게서 반가움이 읽혔다. 자연스럽게 반짝수집단에 합류한 것이다. 싸리재에서 LP 바로 이동하는 동안, 벽에서 발견한 마계 인천이라는 글씨가 힙했다. 마계 인천이라는 조롱의 예술적 승화와 레트로 감성 부활은 경동과 답동을 비롯한 개항로, 개항장 일대를 뺄 수 없었다. 그 옆을 지나는 반짝수집단의 모습은 묘했다. 귀신같은 내 촉이 발동했다.

‘만약 내게도 그런 글자가 있다면, 그건 반짝수집단이 되지 않을까?’

프로젝트가 끝나면 선물할 메이킹 필름과, 나의 전시작 주제였던 반짝임의 대상인 반짝수집단을, 시공과 함께 남겨두려 그들의 뒤를 일부러 멀찍이 따라다녔다. 드라마 태풍 상사의 촬영지를 지나, 애관 극장으로 향하는 그 거리에서 반짝수집단이 멈춰섰다. 그리곤 백인태 작가님이 열심히 무언가를 설명하셨고, 오석근 작가님도 이야기하시는 것 같았다. 길가에서 짧은 이야기를 이어가던 반짝수집단은 그 넓은 길에서 옆길로 들어섰다. 그러고는 난데 없이 좁은 골목길로 들어갔다. 굳이 넓은 길을 놔두고 들어가는 이유가 궁금할 새도 없이, 눈 앞에 펼쳐진 좁은 미로 같은 골목길은 조용하고 깨끗했다. 

‘대여섯 번도 더 왔던 거린데, 여긴 왜 몰랐지.’

좁은 골목은 보통 오래되었거나, 시대적 상흔이 있는데 이곳은 다행히 전자인 것 같았다. 좀 전까지의 길이 그냥 길이었다면, 우리가 들어선 골목은 누군가의 ‘삶의 길 위’ 같았다. 누군가의 삶 속으로 들어가는 특별함. 꼭 인생사와 닮았다. 살면서 누군가의 삶으로 들어가는 건, 인연과 초대가 필요하니까. 서로의 안목으로 인연이 먼저 닿고, 기꺼이 들어와도 된다는 초대가 있을 때, 그제야 들여다볼 수 있는 특별함. 우리의 여정에 누가 그 좁은 골목을 공유했을까. 누가 제안했는지 몰라도, 그 구석진 곳을 자기만의 장소로 간직해왔을 그의 깊은 시선 덕분에, 생각지도 못한 다른 순간을 걸을 수 있다는 게 좋았다. 그렇게 도착한 LP 바.
모서리의 입체감을 활용한 간판을 보며 들어가는 길, 공간의 주인이 궁금했다. 턴테이블을 설명하시는 사장님을 힐끔거리면서 루비살롱의 내부를 찍는데, 영화에서 보던 휴양지 모래사장 위에 있는 펍 같았다. 공간 안에 있는 사람들을 영화로 담는다면, 영화 ’레토’가 좋을까? 레토까지는 아니어도, 레트로 감성과 휴양지 감성 그 중간은 확실했다. 오석근 작가님은 바 테이블 너머에서 LP 와 턴테이블 다루는 법을 설명하셨는데, 카메라가 아닌 LP 를 들고 서 계신 모습이 낯설었다. 우리들의 사이를 가로막은 그 바 테이블은 뭔가 작가님과의 벽이 느껴지게 했다. 

벽…! 완벽.

경매 참여자들처럼 소리치던 수집단 사이에서, 목소리가 가장 큰 내 신청곡이 첫 곡으로 당첨됐다. LP 감성으로 듣는 챠우챠우는 도파민을 터뜨렸다.

‘한남동까지 LP 들으러 갈 필요가 없네’

루비살롱 밖까지 새어나가는 챠우챠우는 안에서 들으면 더 황홀했다. 얼마나 사랑하면 목소리가 계속 떠나지 않고 곁을 맴돌지 수없이 상상했던 노래였기 때문이다. 잊고 싶어도 잊을 수 없는 끝난 사랑 또는 고백하지 않고는 못 배길 절정에 이른 짝사랑을 다룬, 사랑 노래. 여름 내내 운전할 때도, 틀어박혀 편집할 때도 이 공감되지 않는 낭만을 종종 재생했다. 그런 건 존재하지 않는다고, 어쩌면 이미 세상에서 다 사라져 버렸을지 모른다고 믿으면서도 흥얼거렸었다. 한편으론 공감 못하던 낭만, 그 맹목적인 순수함이 실존하길 바라면서. 그랬던 챠우챠우를 LP 로 듣는 황홀함이, 갑자기 기괴하게 느껴졌다. 사랑하는 사람의 환청인데 이렇게 계속, 무미건조하게 부를 수 있을까. 때때로 공허했다. 괴로움에 가깝기도 했고, 거듭된 가사의 반복은 무섭고 괴기스럽기까지 했다. 무덤덤함 혹은 괴로움으로 일관되다가, 끝처리가 낮은 으르렁 같던 지점도 있었다. 화자는 듣고 싶지 않아서 미칠 것 같은, 그래서 터지기 일보 직전인 상황. 사랑 노래가 아니라, 뭐랄까 이를테면 ‘칼의 노래’.
낯선 건 또 있었다. 디지털 음원은 하나로 결합되어 있는 음악에서 멜로디와 가사를 분리해 내는 작업이 필요했다면, LP 는 그러지 않고도 가수의 목소리가 귓가에 꽂혔다. 독립된 생명체처럼 감정의 결이 튀어 올랐다. 루비살롱 한 귀퉁이 비어있던 무대 위에서 델리스파이스가 직접 부르는 것 같은 생생함. LP 와 디지털 음원의 차이를 구별할 만큼 내 귀는 섬세하지 않은데. LP 가 주는 아날로그 감성 때문일까. 가사도 멜로디도 전부 훤히 꿰던 노래인데, 굳어진 감상을 바꾼 건 신기한 일이었다. 뭐가 달라져서일까. 듣는 방식일까, 나의 입장일까. 델리스파이스에서 김훈까지 널뛰던 의식의 흐름을 붙든 건 다시 시작된 경매였다.  순서만 다를 뿐 모두가 낙찰되는 스릴 없는 경매. 그럼에도 거기 있는 사람들 중에 그 경매가 짜릿하지 않은 사람은 없었다. 그리고 그땐 내가 그 장면을 한참이나 잊지 못할 거란 것도 알지 못했다.  자신들의 신청곡을 찾기 위해 책장 같은 진열장에 득달같이 달려들어 LP 를 뒤적이는 모습은 영락없는 빈집털이범이었다. 귀여운 도둑들, 그 참을 수 없는 귀여움에도 불구하고 그 공평한 경매에서, 운이 가장 좋은 사람은 나였다. 신청곡을 재생해주는 방식이 아닌, 각자 듣고 싶은 걸 재생해보는 방식으로 바뀐 덕에 한 번의 기회가 더 생긴 것이다. 나의 두 번째 곡은 라디오헤드의 Creep. 오석근 작가님이 알려 주신 대로 특정 높이의 음을 키우고 줄여가면서 그 차이를 느껴보는 건, 바 테이블 너머에 앉아 들을 때와 달랐다.  뭘 줄이고, 뭘 키워야 내가 원하는 느낌이 되는가를 고민하게 될 줄이야. 조그 다이얼 형태의 것을 돌려서 원하는 출력을 정하는 건, 컴퓨터로 사운드 편집을 할 때보다 더 감각에 집중이 필요했다. 파형이 보이지도 않고, 정확한 숫자 값이 없기 때문이었다. 정확한 걸 선호하는 나로서는 불안해야 했지만, 웬일인지 바 테이블 앞에서 오히려 감각에 의존하는 그 불안정함이 좋았다.  평소라면 표준값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근소한 차이로 수치를 오갔다면, 극단적으로 조그 다이얼을 돌리며 나쁜 건 얼마나 나쁠지, 또 그 나쁨은 실제로 어떤 느낌인지를 시도할 수 있었으니까. 사람들의 즉각적인 반응은 내 느낌을 점검할, 꽤 후하고 귀한 피드백이었다. 나의 값과 표준값은 얼마나 차이가 큰지가 아니라, 내가 얼마큼 돌아가고 벗어나도 괜찮은지.

‘나는, 지금 얼마나 돌아왔을까.’

분명 낙담해야 맞았지만, 어쩐지 나는 가라앉지 않았다. 하필 음악도 Creep 이었지만, 조명이 너무 예뻐서. 하필 내겐 벗어날 힘도 없었지만, 내 주위 귀여운 도둑들이 한껏 들뜬 게 너무나 환해서.

‘이 노래가 이렇게 당연한 노래였나? 그래 그게 뭐 어때서…’  낙관도 비관도 아닌 단순하게 있는 그대로. 그 후렴구가 쉽게 들렸다. 비참하거나 비장해야 했는데, 정말 이상하게도 담담했다.  

‘그냥 이런 나면 어때’  무엇이 감상을 바꿨을까? 나를 둘러싼 것들을 훑었다. ‘귀여움이? 아니면 자유로움이?’

어쩌면, 참을 수 없는 속 깊은 귀여움이지 않을까. 그날 그 모습이 반짝수집단을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았다. 서로를 배려하면서도 의식하지 않았고, 자유로우면서도 함께인. 한때 우리였던 사람들을 담는 건 얼마나 벅찬 일인가를 생각하면서, 먼 훗날 돌아볼 나를 위해 욕심껏 그들을 카메라에 담았다. 그 욕심은 연쇄적으로 커졌다.

‘여기서 이 상황은, 이렇게 나가면? 이 유리 뒤에서?’

유리창이 달린 미닫이문을 열고 복도로 나가, 유리창 너머의 그들을 담았다. 인서트로 쓸 화면도 찍을 겸 복도를 따라 만난 LP 보관실은 마치 수장고 같아서, 차마 들어가진 못한 채 구경했다. 복도 벽엔 몇 년 전 인기를 끈 드라마 OST 레코드판도 꽂혀있었다. 슬기로운 의사생활 그것도 무려 시즌 2. 호그와트 도서관에서 스티브 잡스 연설문을 발견한 것 같은 신기함. 별게 다 있다고 웃으며, 나를 찾는 소리가 나는 메인홀 쪽으로 몸을 돌리던 때였다. 다시 뒤를 돌아본 벽에는 나의 해방일지 OST 레코드판이 있었다. 

‘나의 해방일지, 해방.. 일지…’

마음속으로 따라 읽은 건데, 내 목소리로 생생하게 재생됐다. 해방이라는 목소리와 함께 재생된 건 또 있었다.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지만, 담아두고 싶지도 않았던 슬픔. 분명 그건 그때 다 떨어져 나갔는데. 

‘나는 정말 그 여름에서 해방됐던 걸까? 여전히 나는 새까만 밤 혼자 창후항에 앉아 있던 건  아닐까?‘


홀가분함 속에 문득문득 치고 들어오는 의문들. 그것들에게 잠식당하기 전에 레코드판이 돌고 있는 루비살롱 메인홀로 돌아갔다. 반짝수집단의 촬영을 놓치면 안 되니까. 외국 가수들과의 짧은 우연한 만남을 끝으로, 루비 살롱에서의 짧지만 강렬한 시간은 끝났다. 3 회차를 정리하고, 급정해진 오프더레코드. 우리의 비공식적인 3 회차까지 마치니 개항장엔 숨었던 빛이 어둠과 함께 들었다. 알전구, 가로등, 네온사인, 창밖으로 새어 나오는 가게들의 조명. 답동성당에서 내려다보던 야경이 익숙한 내게, 신포시장 입구에서 답동성당을 올려다보는 야경은 또 다른 느낌이었다.

작년 어느 가을밤, 어깨를 몇 번이나 접었다 펴면서도 추위보다 밀려드는 졸음이 걱정돼, 나는 얇은 셔츠 한 장 차림으로 주차장에서 나와 답동성당 마당에 올라갔다.

‘너무 일찍 왔나’

달 구경과 함께 마당을 걸으며 엄마를 기다리는 동안, 펑퍼짐한 흰 셔츠 밑단으로 유난히 거세던 찬바람이 드나들며 풍선처럼 부풀었다. 결국 바람에 등이 떠밀려서 마당을 몇 바퀴쯤 돌았을까, 그마저도 몽롱해져 향한 계단 끝에서 무심결에 내려다본 신포시장 일대는 따뜻한 조명으로 물들어 있었다. 모두가 지상의 별 같았다. 거리의 조명도, 오토바이와 자동차 라이트도, 지나가는 사람들도. 그렇게 푹 빠져 꿈같이 서 있는 동안, 시장 입구 횡단보도 앞에 선 몇몇 이들이 내가 선 쪽을 향해 카메라를 치켜들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잠이 달아났다. 그들이 서 있는 풍경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려주고 싶었다. 스스로가 그 아름다운 풍경의 일부란 사실을 영영 알 수 없을까 봐 안타까웠다. 그들이 섰던 자리에 서 보니 비로소 알 수 있었다. 알록달록한 야경이 얼마나 설레는지, 내가 서있던 곳이 얼마나 반짝이는 곳이었던 건지.  대한서림을 지나 다시 동인천역으로 돌아가는 길 내내 루비살롱의 조명과 우리가 들었던 음악, 한껏 돌리던 조그 다이얼이 떠올랐다.

‘근데 나 진짜 이렇게 신나게, 아무 생각 없이 놀아본 게 언제였지’

평소라면 없었을 나의 유흥을 되짚으며, 하루 종일 ‘평소라면 없었을’이라고 마디마다 덧붙이던 사건들을 떠올렸다. 무방비 상태여도 무해했던, 이상해도 아름답던. 근사하고 낭만적인 하루. 전철에 앉아서도 장면들이 아른거렸다. 수장고 같던 LP 저장실과 복도 벽 투명 아크릴에 꽂힌 나의 해방 일지 레코드판까지도.  왜 하필 그게 거기 있었는지, 왜 하필 그때 그걸 발견했는지. 삶에는 설명되는 상황보다는, 설명할 수 없는 우연이 많았다. 그냥 우연으로 치부하면 그만이었다. 우연에 이유가 있다면 우연이 아닌 거니까. 
환승을 위해 부평역에 내려서 맨들맨들하게 닳은 플랫폼을 걸을 때였다. 루비살롱의 복도에서 내가 미뤘던 문제의 답을 얻을 수 있었다. 그때 분명 우리는, 나는, 우리의 일상을 회복했지만, 나의 일상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그래서 여전히 나는 창후항의 새까만 밤에 앉아 있었다는 것을.

‘나의 여름은 정말 잔인하기만 했을까?’

너무나 이상했고, 너무나 아름다웠던, 종일 일어난 우연의 연속들이 내게 가르쳐 준 답이었다. 우연이 계속되면 필연이랬다. 집에 돌아와서 생각해 보니 그건 필연이었다. 전부, 내가 얼어붙었을 어느 날에 돌아볼 화석들이었다. 




4회차 | 구슬 서 말 : 잘못든 길, 산과 도시, 테이블, 어떤 간격.



‘와 오랜만에 제시간에 도착했네’ 정체 구간이 심해 양해를 구해뒀지만, 의외로 늦지 않게 집합 장소를 목전에 둔 게 잔뜩 신이 난 상태였다. 주차할 곳이 부족하단 글을 미리 보긴 했지만, 차 한 대 댈 곳이 없겠냐며 올라간 주차장 입구에서야 경험자의 말을 왜 귓등으로 들으면 안 되는가를 몸소 느낄 수 있었다.  하루 혹은 한 달 넘는 장기 주차로 무료 주차장의 단점은 보증되지 않은 사람들의 양심에 온전히 맡겨야 한다는 것이다. 1 회차 이후로 오랜만에 늦지 않은 도착이었는데, 주차장 진입부터 난감했다.

‘다 사정이 있겠지. 뭐.’

불평이 늘기 전에 납득 가능한 정당한 사유들을 떠올리며 몇 분 동안 진땀을 뺐다. 커브각이 나오질 않을 정도로, 입구에 바짝 대놓은 차들 사이에서. ‘정당한 사유고 나발이고 이건 너무 심한 거 아니냐고’ 차폭감이 부족해 전진과 후진을 몇 번이나 반복했다. 내 뒤에 차가 없다는 게 천만다행이었다. 간신히 입성한 주차장에서, 한숨 돌리자마자 다시 한숨이 나왔다. 야박할 정도로 좁은 주차라인을 보며, 두 달 전 도장을 새로 할 정도로 심한 문콕을 당한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제시간에 왔다고 좋아했는데, 나보다 뒤에 진입하셨던 작가님 일행 차보다 늦은 주차에 헛웃음이 났다. 그렇게 오른 집결 장소. 이미 진이 빠진 내게, 색깔로 치자면 레몬색 같은 단원이 인사를 해줬다. 2 회차 때 단톡방에서 사진으로만 본 단원이었는데, 톡톡 튀는 인간 비타민 같았다. 그런 그녀와 첫인사도 했고, 날씨도 맑고 모든 게 문제없는데 고민이 됐다.

‘여길 탐방하며 벤치를 지킬 테니, 다녀들 오시라고 할까?’

1 시간도 못 잔 수면 부족과 이비인후과를 다녀오지 못해서 숨쉬기가 영 불편한 게 문제였다. 컨디션 난조와 등산 포기 수작, 오석근 작가님이 웃으며 슬쩍 건네주신 폴라로이드가, 그것들을 삼켰다.

‘들킨 건가’

작가님의 그 웃음은, ‘사진 찍는 거 좋아하죠? 오늘도 열심히, 마음껏 찍어보세용~!’ 같아서 고민같은 걸 할 수 없었다. 사실 카메라를 쥐고 찍는 그 자체가 좋았으니까. 

‘그래! 마지막 날 내 전시작을 망칠 순 없지!’

내가 구상했던 전시작은 회차별 촬영이 필요했다. 필요한 장면들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무거웠던 눈꺼풀엔 한껏 힘이 들어왔다. 그리곤 또다시 시공 속에 반짝수집단을 담기 위해, 멀찍이서 뒤따라 걸었다. 흙냄새와 풀 냄새를 맡으며.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가 커질수록, 반짝수집단의 웃음소리가 멀어지는 것까지, 제법 설레는 출발이었다.

“거의 다 왔다며!”

분명 4 회차 문학산의 호스트인 그가 직접 제안한 코스였다. 그게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뒤따르던 이유였다. 갑자기 할아버지께 뛰어가서 길을 여쭤볼 때부터 알아봐야 했는데. 기껏 올라가 놓고 빙 둘러서 내려가 다시 코스의 원점으로 돌아가던 때라도 알아채야 했는데. 아주 근거 없는 믿음은 아니었다. 그에겐 이미 완벽한 2 회차라는 전력이 있었으니까. 찰떡같이 믿고 가던 중, 만난 급경사. 문학산에서 본 적 없는 그 경사 앞에 든 불안감은 동물적인 감각이었다. 게다가 마니산 등산로처럼 돌을 손으로 짚으며 올라가는 상황은, 걸으면서도 믿을 수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이제 거의 다 왔다는 말만 계속 반복하는 그에게 결국 소리친 것이다. 반은 장난이, 반은 울분이 섞인 채.  문학산 코스에서 본 적 없는 낯설고 급한 경사도와 또 돌아가면 어쩌지 싶은 불길함. 부모님 기사 노릇 때문에 일찍 집에 가야 하는 조급함. 그런 것들로 내 걸음보다 감정 전환 속도가 훨씬 빨랐다.

‘아니 지금... 지금 이게 맞아??’

그냥도 불편했던 호흡이 불쾌할 정도로 숨이 차기 시작한 건 오래였다. 집중하느라 잠시 잊었던 피로감도 다시 몰려왔다. 간밤에 못 잔 잠 생각, 그건 흙길에 누워 자고 싶게 했다. 지금이라도 내려가면 부모님과 약속 시간에 도착이 가능하다는 생각까지 들자, 다시 고민이 시작됐다. 반짝수집단을 담기 위해서 처음엔 일부러 멀찍이서 뒤따라 시작한 코스였다. 하지만 점점 뒤따르는 게 아니라 뒤처지고 있었다. 그런 내가 힘들어 보였는지 마음씨 좋은 4 회차 호스트는 내가 있는 쪽으로 내려왔다.

“제가 뒤에서 좀 밀어드릴까요?

됐다며 투덜거렸지만 행군하는 것도 아니고, 밀어 주긴 뭘 밀어준단 말인가 싶어 웃음이 터졌다. 재차 도움을 주고 싶어 하는 그에게 대체 언제 도착하느냐고 핀잔을 주는 걸 추임새처럼 반복했다. 그때마다 미안하다며 다 왔다고 당황하는 모습에 계속 놀리고 싶어서. 덕분에 몰랐던 타격감과 놀리는 맛의 상관관계가 이해됐다.

‘이런 거였어. 타격감이 좋으면 놀리고 싶단 건.’

도움이 필요 없으니 먼저 가라고 해도 주야장천 곁을 지키는 그에게, 놀리는 것 외에는 서로 할 말이 없기도 했다. 몇 번 보긴 했지만 그동안 나눴던 대화가 없었으니까. 그만 놀려야 하는 걸 알았지만, 추임새처럼 핀잔을 걸음마다 이어갔다. 그러다 또 정적이 흐를 때였다. 그가 내게 물었다.

“최근에 언제 산에 가셨어요?”

사실 산에 오른 게 언제였는지는 커녕, 당장 내가 뭘 했는지도 기억이 나질 않았다. 열심히 다녔는데 어딜 다녔는지조차도. 고민거리, 문제점 그런 것들 외에는 내가 무언가를 되짚어볼 일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쥐어짜 내서 생각했던 게 지난번 떠올린 역사 아카이빙 지점. 그리고 또 사라진 달동네 추적에 갔다가 국사봉 돌길에서 미끄러져 추락할 뻔한 일, 쥐어 짜내도 나의 행적이 좀처럼 떠오르지 않았다.

‘난 진짜 뭘 했더라’

뭐 하고 지내냐는 말보다 범위가 좁은데, 그 말보다도 생각 회로를 오래 돌리게 했다. 산을 언제 가봤냐는 구체적인 말에 답을 찾다 보니 진짜 뭘 하고 지냈는지도 되짚고 있었다. 그건 오래 매몰되어 있는 동안, 무얼 놓치고 있었는지를 다시 상기시켰다. 한쪽을 선택하면 다른 한쪽은 볼 수 없는 양자택일적 상황, 그건 갈림길에서만 만날 수 있는 종류의 것은 아니었다.

‘너무 깊게 생각에 빠지면, 다른 것들은 생각할 기회를 잃는구나.’

오래 무언가를 골몰하는 것을, 매 순간 최선을 다하는 진지한 삶을 사는 거라던 착각. 부끄러움과 가빠진 호흡으로 걷는 길에서 만난 키가 아주 큰 나무들은 유독 시커멓게 보였다. 좀 더 걷다 보니 다른 나무도 보였다. 나무 데크였다. 눈앞에 펼쳐진 그 목재 데크는 안전한 산책로였다. 우리가 정상적인 코스로 오지 않았던 것이었다.

“아, 가만 안 둬 진짜.”

농담 반, 진담 반 섞은 말이 터졌다. 멍하니 데크를 바라봤다. 굳이 길을 놔두고 이런 코스로 오른 것에 대한 허탈함. 수집단 사람들은 그 데크로 기듯이 넘어갔다. 허탈함과 어울리지 않는 그 모습.  먼저 넘어간 이들 중 도와줘야 할지 망설이는 사람들, 손을 뻗은 그의 친절함까지, 제발 먼저 가라며 거절하고 앞서 보냈다. 얄궂은 나무 데크, 국사봉에서와 똑 닮았었다. 추락할 뻔한 고비를 넘기고 바위 위로 기어 올라갔을 때, 마주했던 눈 앞에 펼쳐진 산책로.

‘그때랑 똑같네’

다른 게 있다면 국사봉에서는 혼자 일을 했지만, 문학산에서는 작은 순간도 지나치지 못하는 다정한 사람들과 같이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것. 차이를 곱씹으며 걷다 보니 이번엔 정말 정상에 가까워진 듯했다. 나를 뒤로 한 단원들의 발걸음도 빨라졌다. 그 틈을 타 주변을 다시 훑던 눈에 들어온 군사시설. 이미 높아졌던 심박수 때문인지, 그 군사시설은 작년 연평도 촬영을 떠올리게 했다. 

‘쿵쿵’

머리가 아팠다. 커다란 심장박동이 귓가를 요란하게도 울렸다. 가로등이 꺼진 거리. 그 길 위에서 총성인지 포성인지 알 수 없는 소리가 쿵쿵 울렸기 때문이었다. 분명 거긴 낮에 봤던 오인 사격 경고판 근방이었다. 혹시나 내가 그 대상이 될지도 모른다는 그 공포감 앞에서도, 난 엉뚱하게도 그걸 피할 방법보다는 그렇다면 내게 남아 있는 시간이 얼마나 되고 무엇을 남길 수 있는지를 고민했다. 얼마 남지 않은 배터리 때문에 꺼둔 휴대폰을 잠깐씩 켜며, 마지막일지도 모를 내 행적을 기록하며 걸어 내려가던 그 컴컴한 밤. 군부대 협조를 얻기까지의 웃지 못할 일도 떠올랐다. 가르쳐주는 이 없이 부딪치며 배워야 했던 시간들. 잊고 지냈던 것들이었다. 책임감 하나만 덜렁 들고 냈던 출품 기획서. 그 대책 없던 것엔, 대체할 수 없는 것들이 많았다. 불행이 자극으로 소비되지 않길 바라면서, 기울어진 시선의 무게추를 맞추고자 했던 기획. 그 한 장엔 밖으로 밀려난 누군가를 헤아리고 싶던 마음도 담았고, 미래의 사람들을 위해 남겨둬야 할 현재를 기록하고 싶은 마음도 담겨 있었다. 이를테면 꽃게껍데기가 썩는 냄새라든가, 함세덕의 무의도 기행의 한 구절 뒤에 숨은 것까지.

‘참 기특했는데 그땐’

잠시 생각에 발이 묶이는 동안 반짝수집단이 사라졌다. 바로 코앞이 정상으로 들어서는 코너였기 때문이다. 코너를 돌아선 정상 입구에는 수집단 대신 뜻밖의 귀여움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풀을 오물오물 씹던 토끼 한 마리. 눈을 떼기 어려운 그것에서 간신히 시선을 옮기자, 전망대 쪽 모여 선 반짝수집단이 있었다. 토끼가 준 귀여움과 반가움이 그리로 튀어 갔다. 인천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문학산. 기획 때문에 오른 적이 있었다. 건성으로, 그저 빙 둘러만 봤던 도시. 시간에 쫓겨 작업만 해치우던 산길은 평탄했지만, 정상에서의 소회는 아이러니하게도 힘들다는 것이었다. 반면 오르는 길은 형편없었지만, 그마저도 여유로 치환할 수 있는 이들과 오른 정상은 홀가분했다. 자유로움 그리고 생경함. 그들 곁에 서서 바라본 빽빽한 도시의 풍경과 서해, 매일 거실에서도 보던 계양산까지. 찬찬히, 또 찬찬(燦燦)히 훑어봤다. 뒤늦게 토끼를 발견한 수집단원들이 토끼에 푹 빠져 있는 동안 나는 그 생경함을 따라 반대편 전망대로 향했다. 빼곡한 네모들 사이로 듬성듬성 솟은 산과 멀찍이 보이는 바다. 그건, 네모들이 사라지고 또 다른 네모들로 바뀌는 동안에도, 사라지지 않은 채 함께 흐르며 변화를 누적해 온 시간들의 형상 같았다. 모두 다른 색의 건물들, 가지각색으로 늘어선 네모들을 내려다보며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을 떠올렸다. 취재를 마치고 울먹이던 할아버지, 자신들의 이야기를 물어봐 줘서 고맙다며 눈가가 빨개지던 할머니, 두려움에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했다며 해묵은 이야기를 꺼내시던 아저씨. 길 위에서 내가 만났던 네모들. 그들의 뾰족함이 지킨 것들. 수많은 네모가 지탱해 온 이 도시 앞에서, 나도 그 틈에 있을까 궁금했다. 도시를, 아니 아주 작은 동네쯤이라도 지켜왔을지. 보이지도 않는 작은 네모. 나의 뾰족함은 과연 무엇을 지켜왔을까. 뾰족함이 지켜온 것보다는, 그 뾰족함을 지탱해준 것들을 떠올리는 편이 더 수월할 것 같았다. 어쩌면 아직도 덜 지어졌을지도 모를 나의 네모. 다 지어졌든 덜 지어졌든, 거기에도 있을 뾰족한 것들은 있을 것이므로. 나의 뾰족함과 그걸 지탱해 준 것들. 양자택일의 상황 속에서, 보지 못한 것들만큼이나 깊어졌고 더 견고해진 것들이 있었다. 지치지 않기 위해 줄인 잠, 놓치지 않기 위해 나를 몰아붙였던 날들. 새우가 되어 잔 시간들을 다 합쳐도 여덟 시간도 넘지 못했던 열흘 간의 밤들. 쪽잠에서 깨자마자 다시 해야 할 것들을 떠올리며 서두르던 새벽들.  내가 길 위에서 만났던 사람들의 목소리가 다 사라져 버릴까 봐 쫓기던 날들. 날이 선 뾰족함으로 지키고 싶은 말랑한 것들을 떠올렸다.  양자택일 속에 있던 그 상황들은, 내게 정말 나쁘기만 했을까. 자유로움이 주는 행복감과는 다른 무언가였다. 나를 더 뾰족하게 만들었던 것들. 분명 좋은 것들이었는데도, 나는 종종 해저로 가라앉아 시간을 허비해 왔다.

‘도대체 난 뭐가 문제였을까’

문제는 정작 무엇이었는지 되짚으며 도시역사관으로 내려갔다. 뾰족함에 정신이 팔린 채로 멍하니 블로그에 올릴 사진들을 찍는데, 4 회차 호스트가 하산 소식을 알리러 왔다. 정상에서 발견한 귀여운 토끼에 잔뜩 빠져있던 수집단은 어느새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모습에 반사적으로 촬영 버튼을 눌렀다. 우리의 거리를 좁히기 전에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담을 좋은 기회였으니까. 

“아니, 근데 더 웃긴 건, 심지어 먼저 물어봐 놓고 아무도 말을 안 들어! 그럴 거면 왜 물어본 거야 대체!”

쓸어뒀던 웃음이 다시 테이블 위에 쏟아졌다. 거의 소강상태였는데, 울분 섞인 내 넋두리에 겨우 진압을 마쳤던 웃음들이 터진 것이다. 산행 끝에 우리가 마주했던 강렬한 장면 때문이었다.

‘이건 뭔가 잘못된 거 아니야?’

다시 오르고 있었다. 분명 하행 길이었는데, 오를 때처럼 초반부터 또 다시 길을 잘못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이 길이 맞다고 자신 있게 새로 찾은 길마저도 역시나 나무나 돌을 짚으며 꾸역꾸역 내려오니 다행히 주택가가 보였다. 산행의 마침표라는 목표 달성이 주는 여유와 안도감 덕분에 편안해진 마음으로는 다시 에너지가 차올랐다.  그래도 좋았다며 장난스러운 투덜거림과 애써 그 고생의 의의를 찾으며, 함박마을로 이어진 출입구 쪽으로 터덜터덜 가고 있었다. 중앙아시아 음식이라는 낯선 음식에 대한 기대로 잠깐씩 설레기도 하면서 갑자기 단원들의 목소리가 커졌다. 텃밭. 그건 우리가 오를 때 찾았어야 하는 곳이었다. 그 옆에 완만한 산책로는 너무 보란 듯이 있었다. 믿을 수 없다며 우리가 내려온 길과, 새로 발견한 길을 번갈아 보며 원성과 웃음소리가 그 길을 채울 때였다. 분명 우리가 내려올 땐 거기 즐기고 있던 남자가 그 새로운 길에서 내려오고 있는 것이었다. 그것도 아주 가벼운 발걸음으로. 천근만근이던 내 발걸음과 대조적이었다. 꾀죄죄한 몰골로 내려온 우리와 달리 뽀송뽀송하게 유유자적 내려오던 그 잊을 수 없던 장면이 테이블에서 말이 안 되는 상황들을 정리하며 우릴 터뜨린 것이다.

‘완전 시트콤 아니냐고’

다큐에서 시트콤까지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던 우리가 되짚던 그 하루에는, 판타지도 있었다. 정상에서 만난 귀여운 토끼, 게다가 그 토끼는 자기가 어떻게 하면 귀여운지를 잘 아는 토끼 같았다. 그 토끼의 깜찍함과 렌즈 앞에서 보여준 스타성에 대해 칭찬하느라고 분위기는 달아올랐다.

“그건 아마 엄마나 아빠나 누군가한테 보고 배운 걸 거야.”

우리의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이야기는 문학산에서 마주친 또 다른 귀여움으로 향했다. 잘못 들어선 하산 길에서 다시 발길을 돌려 올라가고 있었다. 멋진 바위 위에서 끝까지 어처구니없던 하루, 하지만 빛나던 그 순간을 담으려던 때였다.

“야 잠깐만 기다려 사진 찍으시잖아.”

인증샷을 남기려고 자릴 잡던 우리를 발견한 꼬마 한 명이 자기 무리를 제지했다. 한편에서 기다려준 것을 계기로 우리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우리가 뭘 하고, 뭐 하는 사람들인지 호기심에 반짝이던 꼬마들의 표정. 하지만 문학산 꼭대기까지 어린이끼리 올라온 그 상황이 궁금한 건 우리도 마찬가지였다. 이야기 내내 제법 어른스러운 태도와 또박또박 말하는 그 사랑스러움에 듣는 내내 광대가 내려오질 않았다. 용감하고 의젓한 아이들에게 폴라로이드로 그들의 호기로운 유년을 남겨주고 싶단 생각을 할 때였다. 사진을 한 장 찍어주자는 누군가의 제안을 시작으로 수집단에선 그러자며 동의가 터졌다. 모두가 한마음인 그 상황. 옷깃만 스쳐도 인연인데. 우리 곁에 잠시 머물던 아이들의 사랑스러움 앞에서 그 옷깃을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어른은 우리 중에 없어 보였다. 사진을 나눠주자 비치는 아이들의 숨겨지지 않는 들뜬 표정, 그리고 이어지던 그 제안까지 감동이었다. 우리를 따라오겠다는 황당함이 주던 감동. 낯선 어른들을 쉽게 믿는 아이들의 마음은, 내가 지켜주고 싶던 세상의 일부였기 때문이다. 

“어 잠깐만, 이런 건 말로만 하면 안 되는 거랬는데…”

인사하고 헤어지려던 때 아이 중 한 명이 사진값을 줘야 한다면서 주머니를 뒤졌다. 이런 건 그냥 고맙다고 말로만 하고 가면 안 된다면서 꺼낸 꼬깃꼬깃한 천 원짜리. 그 모습에 기가 막히면서도 기특해서인지 웃음이 또 터졌다. 돈을 쥔 아이에게 다들 거절하며 한마디씩 이유를 덧붙였다. 다정한 말들이 쌓였다. 그 덕에 옅어진 아이의 얼떨떨한 표정엔, 아무래도 마땅한 값이 더 필요해 보였다. 그 마음을 알 것 같았다. 나 역시 어른들의 호의를 선뜻 받지 못했던 어린아이였기 때문이다. 큰엄마가 내게 쥐여 주신 용돈을 차비로 쓰시라며 돌려드리던 꼬꼬마 시절의 장면이 떠올랐다.  고마운 상황을 못 견뎠던 어린 날. 지금은 넙죽넙죽 잘 받는 고마움이지만 그래도 덜 자란 건지, 누군가 내게 고마워하는 마음을 소화하는 건 종종 불편한 일이었다. 평소라면 멋쩍어 뚝딱거렸겠지만, 사람들이 먼저 쌓은 다정한 분위기와 여유가 내게 묻었는지 한마디를 보태게 했다. 

“너네가 재밌게 놀고 안전하게 내려가는 게 사진값이니까 그러지 않아도 돼. 조심히 내려가!”

그 애 부모님이 남의 호의를 그냥 받으면 안 된다고 직접 교육했다거나, 남에게 늘 고맙다는 인사와 보답을 하시는 것을 보고 스스로 배웠다거나. 어쨌든 그 아이들이 참 똘망똘망하다고 이어지는 우리의 결론에 모두 격하게 동의했다.  잘못 든 길에서 우연히 만난 아이들은 분명 그때 우리의 장르를 바꿨다. 그렇게 식을 줄 모르는 열기 속에서도, 내 접시는 비질 않았다. 거리가 멀어서 먹지 못하는 줄 알고 내 앞으로 자꾸만 들이밀어 주던 접시들. 천장에 귤색을 닮은 조명들이 매끈한 테이블 위로 빛을 쏟았다. 양고기를 못 먹는다는 내게 작은 조각으로 양꼬치를 잘라 건네주던 이. 새로운 맛의 세계로 들어올 것을 응원해 주는 세심하고 다정한 배려들에도 나는 보기 좋게 실패했다. 하지만 자꾸 권해오던 그 다정함 덕에 성공한 도전도 있었다. 외관은 전혀 먹고 싶지 않았지만, 맛보는 순간 머릿속 전구에 불이 탁 켜지던 보르시. 그게 중앙아시아의 맛에 발을 들이게 했다. 생경하던 그 맛은 문학산 정상에서의 순간과 닮았었다. 회차의 활동을 되짚으며 웃고 떠드는 그 순간에 앉아, 절반의 위임이 떠올랐다. 동생에게 위임한 부모님의 베스트 드라이버 역할이었다. 자리가 파하면 남은 그 역할을 하러 가야 하니까, 절반의 위임. 그런데 한심하다고 여겼던 위임이, 오히려 기특했다.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하루였으니까.

식당에서 나와 우리는 식료품 가게로 갔다. 기념품처럼 러시아 먹거리를 담은 봉지를 각자의 손에 들고 헤어졌다. 어둑해진 하늘, 길고 짧던 시간. 아코디언 같은 하루. 함박마을의 이국적인 거리를 빠져나오며 주택가 골목으로 들어섰다. 그 끝에 다시 만난 산으로 이어지는 언덕길, 거기엔 장미 그림이 들어간 붉은 장미 조명과 노란 벽등이 훤히 켜져 있었다. 수수한 낮의 풍경에선 보지 못했던 화려함이었다. 평범한 가로등의 빛조차 어둠이 깔린 거리는 낭만으로 만들어서일까. 훤한 가로등을 따라 그 언덕길을 오르며 주차장 입구로 다가갈수록, 전쟁 같던 주차와 길을 헤매고 오르던 산행이 오버랩됐다. 그럴수록 가볍게 덜렁거리던 내 손에 쥔 봉지는 짜릿한 바이킹처럼 오르내렸다. 주차장에서 걱정했던 문콕을 확인했는데, 너무나 멀쩡했다. 좁은 공간 속에서도 좁지 않게 간격을 벌려 주차를 해둔 내 옆의 차. 매너 있게 주차된 그 차로 걸어와 문을 열고 들어가는 남자를 한참 동안 쳐다봤다. 자신만을 위한 것도 아니었지만, 그 빽빽함에서 배려를 섞은 최선의 간격.

‘기어코 만든 간격..!’

어쩌면 내게 문제는 양자택일의 상황도, 의무감과 책임감만 가득한 상황들도 아니었던 것 같았다. 그 틈 사이에 여유를 넣어줬더라면, 산길에서 갑자기 받았던 질문에도 올랐던 산들을 쭉 읊지 않았을까. 낮에 대답하지 못했던 산들의 이름이 문득 떠올랐다. 

‘동생한테 부탁하길 정말 잘했네’

테이블 위에 한바탕 쏟아낸 것들은, 일상 속에서 내가 겨우 만든 틈에서 비롯됐다. 그 틈 사이로 들던 빛, 바람의 온도, 흙냄새, 나무 냄새, 토끼가 딛던 잔디밭의 사각거림, 낯선 중앙아시아 음식에서 닿은 익숙한 맛. 그 순간들은, 진척 없던 근래의 시간들을 파고들었다. 끝도 보이지 않는 정체 구간, 그 터널 가운데에서 꼼짝없이 자책만 늘어갔던 기나긴 시간들.

‘대나무의 마디…’

언젠가 읽은 정호승 시인의 산문집이 떠올랐다. 속이 비어 있는 대나무가 바람에도 휘어지지 않고 곧게 클 수 있는 건, 마디가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 마디는, 대나무가 성장을 멈추고 힘을 비축하는 순간이라고. 어쩌면 나는 지금 한 마디를 막 만들어내던 중이 아닐까.  그래서 이 순간이 지나고 나면 더 단단하게, 그 네모들처럼 뾰족함으로 나의 동네를, 그리고 먼 훗날에는 도시를 지탱해 가고 있지 않을까.


5회차 | 다시라기 : 모터타임즈, 전기구이 통닭, ‘우리 반짝이들 ’

  

‘지각 인생을 살고 있다.’

한 언론인이 외국에서 늦깎이 대학원생이던 자신에게 내린 진단이었는데, 나는 수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그 말을 잊을 수 없었다. 엘리트였던 그로서는 자신의 모습에 대한 겸손한 자조였겠지만, 내게 그 말은 겸손도 자조도 아닌 딱 글자 그대로였다. 뭐든 더디기만 한 내게, 이보다 어울리는 표현을 찾기 어려웠으니까. 그 말은 시치미처럼, 떼려야 뗄 수 없는 꼬리표 같았다. 뭘 하든 오래, 천천히, 길게 하는 것들이 더 좋았다. 느긋해서는 아니었다. 다만, 깊숙함을 갖기 위해서는, 깊이 파고들 충분한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나는 이 세상 모든 분야에서 엘리트에 속하지 않았으므로.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톺아보기엔 턱없이 모자랐지만, 훑어보기는 충분했던 모터타임즈의 관람이 끝났다. 다만 전시장에서 놓치고 돌아서야만 하는 것들이 아쉬울 뿐이었다. 집중하지 않던 게 아니라, 느린 나의 속도 탓이었다. 건물 사이를 이동해야 했던 전시 코스, 때마침 미스트처럼 흩뿌리던 비, 잔뜩 흐린날씨까지. 모든 것들이 어둠의 연속선에 있었으니까. 그 연속이 끊어진 건 마지막 전시 코스에서 나오면서였다. 올려다본 하늘은 변덕이 끝난 건지, 구름이 몇 점 걸쳤지만 거짓말처럼 맑아져 있었다. 밤과 같던 컴컴한 공장 안을 벗어나, 채도와 명도가 한껏 오른 하늘을 마주하는 건 해방감도 상쾌함도 아니었다. 

“매일 여기서 일하고 나와서 이 하늘을 보는 사람들은 어땠을까, 무슨 생각을 했을까?”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지만, 허를 찌르는 백인태 작가님의 그 말에 흐렸던 정신이 돌아왔다. 좀 전까지 컴컴함 속에 있다가 갑자기 맞닥뜨린, 명도와 채도가 한껏 오른 새파랗고 훤한 하늘. 급격한 피로감, 그리고 몰려드는 감정.

‘만약 내가… 이 공장의 노동자였다면…?’

컴컴한 공장 안을 갓 빠져나와, 다시 들어가고 싶지 않았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와야만 할 이유, 이를테면 사랑한다거나 책임져야 한다거나 하는 것들’을 떠올렸겠지.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어'

매번 가볍게 툭, 하지만 본질에 가까운 것들을 날카롭게 찔러주는. 이건 복숭아꽃 사람들을 좋아했던 이유 중 하나였다. 무심한 듯 던진 것 아래로는, 세상을 향한 그들의 다정한 시선이 그림자처럼 깊게 드리워져 있다는 것도 나는 참 좋았다. 물론 이후의 답은 온전히 내 몫으로 남는다는 점마저도. 넘치면 내 몫이 아니고, 부족하면 답일 수 없는. 그래서 그들이 그렇게 던질 때마다, 대부분 딱 내 그릇의 크기만 한 답들을 나는 열심히 주워 담아왔었다. 스스로 깊어질 수 있는 문제. 거기서 답을 찾으며 느낀 생동감이 내게 다시 차갑게 찔러오는 따끔한 생의 감각들.

모터타임즈는 오석근 작가님이 전시자로 참여하셨다기에 알게 된 전시였다. 그 한 가지 이유로도 전시회는 우리의 관심사였다. 그리고 멈춘 자동차 공장에서 열게 된 아카이빙 전시라며 전시에 관해 들을 때부터 우리는 5 회차의 희망 장소와 활동을 더 고민할 필요가 없어 보였다.

‘그냥 전시도 아니고, 무려 아카이빙인데.’

아카이빙, 그 단어가 감정의 파동을 만들던 몇 년 전이 떠올랐다. 적갈색 벽돌 담벼락, 그 위에 아카이브 사업이라는 문구의 현수막이 펄럭였다. 그때까지 아카이브는 내게 매력적이진 않았다. 그렇다고 존재의 당위성을 부인해 본 적도 없었다. 그저, 나의 주관이 외부 세계의 객관과 꼭 일치하는 것은 아니니까. 세상은 언제나 흥미로운 것들로만 굴러가지도 않고, 매력과 중요성이 반드시 일치하는 것도 아니었다. 내 끌림과 관계없이, 중요한 것들도 있었는데 아카이빙은 그런 것이었다. 마치 오래 방치된 박물관 같은 느낌.

아카이빙의 특별해진 계기는 영상을 제작하면서였다. 내가 만들던 영상의 대부분은 지금은 더 이상 볼 수 없는 이야기들을 다루고 있었다. 그 영상에 필요한 것은 유명인도 아니었고, 떠들썩한 사건도 아니었다. 영상이 그런 것들만 다룬다면 나는 굳이 영상으로 전향할 이유가 없었으니까. 내 영상에서 꼭 필요했던 건 현재도 과거에도 주류가 아니었다. 스포트라이트가 아니라 서치라이트를 비춰야 하는 것들이었다. 변덕을 알 수 없는 바다 곁으로 들어가야 했던 사람들, 지도에도 남지 않은 지명을 기억하는 사람들, 수몰된 마을 허리의 당산 나무, 매립지가 되기 전 마당까지 들던 파도 소리와 바다 냄새. 철거 예정으로 텅 빈 달동네의 불 꺼진 골목까지.

자신들이 무대 밖으로 밀려났는지는, 관심조차 없던 사람들의 성실한 매일이 모여 만든 것들. 인간 군상(群像)을 통해 그제야 선명해지는 진짜, 시대의 초상(肖像).

대부분 검색 엔진에서는 찾기 어려운 것들이었다. 그때 그곳에서조차 비껴 섰던 사람들의 목소리와 결이 남아 있는 이야기들이었으니까. 너무나 평범해서 사회가 기록할 이유조차 느끼지 못했던 그 보통의 것들, 그래서 아이러니하게도 지금은 귀한 기록들. 심미안을 가진 이들을 통해 살아남은, 대수롭지 않았던 그 기록들이 필요했다. 그건 그 시대의 가장 낱낱의 장면이고, 증언이었다. 그래서 때론 사라져 가는 달동네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흔적이, 때론 접경지 섬 주민들의 생업과 어망은 물론 생명체들에 관한 기록이 담겼던 아카이빙 속 자료들은 내 기획의 시작이자 끝이었다. 아카이빙에서 얻은 건 정보만이 아니었다. 당시 1 인 제작자였던 나는 항상 불안했다. 

'얼마큼이 괜찮은 거지...'

아무리 촘촘히 윤리적 기준을 세워도, 정작 그 기준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뭐가 옳고 뭐가 그른지, 어디까지가 허용 가능한지 함께 토론할 동료나 선후배가 없는 건, 1 인 제작 환경의 가장 큰 단점이었다. 그건 가뜩이나 빠듯한 제작 시간을 촉박하게 했다.

"이건 됐고...!"

다 읽은 학술지를 정리하고, 다시 매가리 없이 새 학술지를 열었다. 

"보자보자~~ 찾아~~보자!! …어…아!"

혼잣말을 하며 넘어갔던 페이지에서 다시 앞으로 돌아왔다. 평소라면 바로 본문을 읽었겠지만, 학술지에서 자주 접했던 학예사에게 생긴 내적 친밀감은 쓸데없이 서두를 펴게 했다. 그의 개인적인 소회를 읽어주고 싶었다. 그리고 그의 지극히 개인적인 서두를 읽어 내려가던 때였다. 내가 그토록 찾던 선배이자 동료가 거기 있었다. 그가 서두에 남긴 철학은 당시 고민하던 나의 제작 윤리에 확신을 줬기 때문이다. 기록자이자 관찰자로서 했던 그의 다짐은, 영상인인 내게도 확신뿐만 아니라 제작 철학의 깊이를 더해줬다. 그 이후로 아카이빙을 마주하면 묘하게 가슴 벅찬 것들이 있었다. 나의 심미안과 타인의 가치관이 맞아떨어질 때, 사람들에게 닿을 수 있는 삶의 감정들. 그리고 내게 흔들리지 않는 기준을 만들어준 아카이빙. 그 이후로 나는, 기록한 이가 유지하려 했던 거리와 객관, 또 숨겨둔 주관과 끝내 전하고 싶던 가치를 살피곤 했다.
그런 내게 ‘모터타임즈’의 2 시간으로 제한된 관람 시간은 조금 부족했다. 정말, 반짝 지나가 버린 시간. 그 허기짐을 달랠 시간이 필요했다. 그 허기가 이 허기인가는 몰라도. 다시 시작된 5 회차, 그 2 부의 막이 테이블 위에서 올랐다. 

“떡볶이!! 떡볶이요!!!”

떡볶이를 향한 나의 간절함은 업그레이드됐다. 떡 사리를 추가한 닭볶음탕으로. 전기구이 통닭에 닭볶음탕까지 주문해서였을까, 우리는 조금 전까지 어둡던 공장 안팎을 누비던 전시 관람객들 같지 않았다. 전시가 끝난 뒤 피로감은 내게만 몰려왔던 건가 싶을 정도로. 

‘그렇다기엔 아까 눈썹이 다들 너무 11 자였는데’

전기구이 통닭 냄새가 컴컴한 통닭집의 조도도 잊게 했다. 약간은 찌든 의자, 피곤해 보이는알바생들, 식사가 끝나가는 테이블에 나른한 표정으로 앉아 있던 사람들. 거기서 제일 생기 있어 보이는 건 우리 테이블 같았다.

‘?? 이 사람들… 피로가 아니라 다들 배고팠던 건가?’

활기참 속에 앉아 시작한 전시 이야기. 그 자리에 전시에 참여하신 오 작가님이 계셔서 조금도 조심스러울 법도 했지만, 나의 조심성보다 ‘우리의 익숙함’이, 관람객이 아닌 반짝수집단으로서 이야기를 나누게 했다. 물론 칭찬 일색이라 아쉬운 점을 찾는 것을 도전 과제로 삼을 정도였지만.

“나는 그게 약간 아쉬웠어. 살짝, 아주 살짝!”

까마귀처럼 반짝이는 모든 물상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전시작 중 조명에선 자주 시선을 빼앗겼었다. 그중에서도 반딧불이를 떠올리게 하던 어떤 작품은, 내게 그 자체로 아름다움이었다. 그리고 누군가는 그 아름다움에서 약간의 아쉬움을 찾아냈다. 물론 그게 내 감상을 바꾼 건 아니었지만, 그 본질적인 감상이 내 생각의 평수를 넓힐 수 있다는 게 좋았다.

각자의 입을 통해 듣는 전시회 이야기, 그 덕에 내 모자란 시간의 다른 조각들이 채워지고 있었다. 뭘 느꼈고, 어떤 기분이었는지. 전시에 기획하고 참여했던 예술가를 앞에 두고 허심탄회하게 평을 나누는, 괴상하고 건방진 자유로움을 어디서 경험할 수 있을까. 그 평을 겸허히 들으면서도, 비하인드 스토리까지 내놓는 참여 작가의 이야기까지 더해지는 그 이색적인 것들이 주는 감정.

‘값지고 멋져!’

생산라인에서 일하다 생기는 짧은 몇 초의 틈에서 운동을 하는 사람도, 책을 읽는 사람도 있었다는 것. 그 신화 같은 이야기들에 나름 치열하게 산다고 여겼던 나의 착각은 깨졌다. 찰나도 흘려보내지 않고 기어이 자신을 새겨 넣는 그들의 그 치열한 순간들에. 나를 깬, 그것들은 시간의 활용만이 아니었다. 모터타임즈를 통해 들여다본 그곳의 노동자들은 기계를 다룰 때, 사람을 대하듯 섬세하게 살폈다. 사람의 안전과 직결되어 있다는 사명과 전문성이 동시에 존재하기 때문이었다. 하루 종일 기계를 다루지만, 누구보다 사람과 생명의 소중함을 자주 생각하고 있었다. 종일 기계만 보는데, 어떻게 그들의 생각은 기계적이지 않을 수 있는지. 그건 철저한 외부인의 관점, 온전히 나의 관점이었기 때문이다.

전시장을 도는 내내 맴돌던 말은 ‘프로’였다. 단순해 보이는 노동은 결괏값이었다. 오히려 그건 치밀하게 세팅된 단순함이었다. 사람의 안전이 거기 달렸기 때문이었다. 만드는 사람의 안전도, 그걸 팔고 운반하는 사람 그리고 마침내 완성된 자동차를 사고 또 타는 사람의 안전도.

모터타임즈 내내 자동차 공장에서 머물며 내가 배운 것은 결국 기계가 기계를 만들지만, 그 기계는 사람이 다룬다는 것이었다. 거기서 차갑고 단단한 기계와 부딪치면 인간의 연약한 몸은 쉽게 상하고, 부서지고, 사라질 수 있다는 걸 그들은 익히 보고 들었을 것이었다.

그러나 허무하게 생명이 끝나기엔, 빚어지기까지의 과정이 얼마나 수많은 헌신이 필요한지 그들이 모를 리 없다. 하나의 인간이 태어나 자라기까지 양육자의 희생과 공이 따르는지. 또 그렇게 자란 그들 역시 공장을 벗어나면 각자 부모, 형제, 자식, 손주로 돌아가서 짊어져야 하는

삶의 역할이 얼마나 많은지. 그래서 공장 안팎의 사람들이 얼마나 귀한 존재인지까지도. 그들은 매번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그들의 관점으로 보면 그 기계 주위는 물론, 너머의 사람들을 생각함은 당연한 결론일지도. 온종일 기계를 다루는 노동자들은 그 철제 너머의 사람을 생각했는데, 정작 사람과 풍경을 모두 바라보고 담아야 하는 나는 사회라는 커튼에 가려 그들을 보지 못한 것 같았다. 가려졌다는 핑계로.

어둡고 추운 공장 속 전시된 작품들을 돌아보며, 안전과 효율의 규칙 속에 고단한 삶의 규칙과 무게를 목격했다. 높은 담장 밖에선 몰랐던 것들이었다. 그 볼품없는 건물 안은 그곳에 있던 사람들 덕분에 빛이 났다. 열정, 자부심, 사명감, 전문성, 존중 그리고 사람이 사람을 생각하는 마음까지. 기계를 만지는 일이 단순할 것 같다고 생각했던 건, 그야말로 얼마나 단순한 편견이었을까. 

“아우 난 싫어. 너무 단순하지 않냐?” 

입버릇처럼 말하던 친구가 있었다. 그녀가 싫은 건 항상 단순함이라고 했지만, 나는 그 말이 전혀 단순하게 들리지 않았다. 그 단순함 뒤에 붙는 수식들 때문이었다. 수식은 다양한 직업군과 재미없다 같은 서술어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 수식들은 날이 갈수록 거듭 진화했다. 그 단순함의 수식을 받는 직업군이 늘어갈수록 점점 그녀의 말이 평가처럼 느껴졌다. 그게 불편했지만, 불편함의 정체가 무엇인지 마주하는 게 두려웠다. 그 순간부터 친구를 멀리하게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 나지막하고 얄팍한 시선. 공장을 돌며, 쥐고 있던 단순함이라는 포장을 벗길 수 있었다. 단순하다는 말로 누군가를 평가할 때, 얼마나 많은 것을 생략하는지, 그리고 그 생략이 얼마나 쉽게 누군가의 삶을 납작하게 만드는지를. 전기구이 통닭집 테이블에 앉아 그때를 떠올리며, 누구의 생각이 더 옳았는지를 가늠하는 건 더 이상 의미가 없었다. 다만, 나와 그녀 모두 얼마나 좁은 반경 안에서 세상을 보고 있었는지가 중요했다.

흐릿하고 좁은 나의 시야를 위해, 가끔은 자신의 키를 주변과 맞춰줄 수 있는 존재, 또 때로는 불을 켤 줄 아는 존재들만 곁에 두고 싶어졌다. 그래서 비좁은 내 시선이 조금 더 선명하고, 넓어지길. 차가운 기계를 다루며 그 너머의 사람을 보던 이들과 불 꺼진 공장 노동자들의 흉터를 전시작에 남겨둔 이들의 시선 같은. 그 시선들이 내게 보여준 군상을 보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다른 군상과 모여 언젠가 바라볼 초상이지 않을까 하는. 시작은 각자의 사정이었겠지만 결국 저마다의 가치와 책임감으로, 세상의 모든 일상은 굴러갔다. 후미진 곳에서도 스스로 기꺼이 세상의 기계가 됨을 마다치 않던 사람들. 그 덕에 정상적으로 굴러왔을 나의 일상. 모터타임즈의 불을 켠 건 중요한 행위였다. 멈춘 공장에서 불은 들어오지 않는다고 했으니까. 온기도 열기도 사라진 컴컴한 공장에서, 예술가들이 아카이빙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켠 빛. 그곳에 있었던 노동자 중에 공장을 아주 떠난 사람들도 있고, 남은 이들도 있다고 했다. 

다들 어떨까.

한때 자신들의 하루였던, 모든 게 멈춘 그곳이 어떤 이미지로 존재할지 궁금했다. 그리고 그들이 거기 일하는 동안, 어둡고 춥던 건 그들의 일하던 공장 안 뿐이었는지, 공장 밖은 과연 그 안보다 찬란하고 따뜻했을지도. 수북이 쌓아 올린 양배추샐러드를 바라보며, 머릿속으로 찬찬히 정리해 본 전시에 마음 한구석이 시렸다.

“뭐야 혼자만 많이 먹으려고~!”

다행히 그 시림을 한낮의 설원으로 바꾼 건, 아무래도 반짝수집단의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였다. 시릴 틈이 없었다. 수집단 사람들 틈에선, 차가운 풍경도 한낮의 설원이 된다. 추워도 어둡지 않은 한낮의 설원. 새하얀 추위는 오히려 잠을 깨우는 예리한 감각이다. 햇빛에 반사되면, 눈밭은 온통 반사판이 된다. 계양역을 나와 하얀 입김을 내뿜으며 봤던, 새해 첫날 아침 새하얗고 차가웠던 그 설경. 여러 감정의 뭉치들 중에서 그건 희망. 그들의 무해하지만, 한시도 비지 않는 오디오. 결국 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그들은 내게 하얀 겨울이고, 흰 눈이었다.

“오 진짜, 너무 맛있다!”

적당한 매콤함과 쫄깃함. 테이블 끝 자리였지만, 소소하게 옆 사람을 잘 챙기는 그녀 덕에 불편함은 없었다. 그녀를 보다 보면, 내가 그 나이 때 뭘 했는지를 돌아보게 됐다. 

그녀와 테이블에서 나란히 옆에 앉은 건 3 회차 ‘오프 더 레코드’ 때가 처음이었다. 그녀는 첫 자리에서, 예술과 전혀 먼 전공을 가졌기에 일부러 이 활동에 들어왔다고 했다. 복슬복슬한 재질을 좋아하고, 휴대전화 언어 설정이 영어인 것까지. 그녀에 관한 시시콜콜한 정보가 늘어갈수록, ‘우리’라고 말로 묶는 것도 스스럼없었다. 작은 유사점 하나에도 괜히 흐뭇해질 만큼. 내적 친밀감, 그건 그녀에게만 느꼈던 건 아니었다. 

“자~ 우리 반짝이들!”

모터타임즈 전시장에서 오석근 작가님이 특유의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시며, 우릴 그렇게 부르셨다. 그 잠깐 사이에 속으로 몇 번이나 ‘우리 반짝이들이래, 우리 반짝이들’이라고 곱씹으며 번지는 웃음을 힘껏 참았지만 실패했었다. 그땐 웃음 참기의 실패 사유가 ‘반짝이들’이라는 호칭이 단지 귀여워서인 줄 알았다. 다시 생각하니, 그 앞에 붙은 ‘우리’라는 지시어 때문인 것 같았다. 그런 이유들은, 나를 이유 없이 들뜨게 했다. 때마침 테이블에서 이어진 남은 한 회차에 대한 계획은, 들뜨던 열기에 찬물을 끼얹는 것 같았다.

“아오. 진짜!”

백인태 작가님의 장난스러운 추임새 한방으로 우린 다시 깔깔거렸다. 한바탕 소동의 장본인이던 나의 민망함과 무안함도 그 웃음들로 단번에 날아갔다. 통닭집에서 나와 계산 중인 오석근 작가님을 기다리며 밖에 서 있을 때였다. 각자의 귀가 방법을 이야기하던 타이밍에, 지하철을 탈 거라며 주머니에 손을 꽂았는데 있어야 할 카드가 없었다. 그건 교통카드와 겸용인 신용카드였다. 어디서 잃어버린 건지 기억 속에도, 가방 속에도 없었다. 전기구이 통닭집으로 다시 들어가서 뒤지고 있을 때였다. 테이블과 의자를 살피는 나보다 한 발 더 잽싸게 바닥까지 샅샅이 훑는 백인태 작가님의 장면은 뭐랄까, 서스펜스 같았다. 알고 보면 잃어버린 카드가 내 것이 아닌 뭐 그런 반전이 기다리고 있는 건가 싶었으니까. 

그 난리를 피우고도 찾지 못한 채 나와서는, 모두의 시선이 내게 쏠려 있을 때였다. 마지막으로 한번 더 물색 중이던 에코백 안에서 카드가 나오자, 추임새와 웃음이 함께 딸려 나온 것이었다. 물론 그 추임새 절반은 진심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짜증 같은 진심이 절반쯤 섞여 있다손 치더라도 전혀 서운하지 않았다. 그랬다면 그건 안도에서 오는 것이었을 테니까. 평소엔 볼 수 없던 웃음기 사라진 얼굴, 요청 없이도 반사적이던 행동력, 그리고 ‘반짝이들’의 그 당황하던 눈빛은 모두 안타까움의 다른 표현이었으니까.

“안녕히 가세요!”

환한 인사로 해산하고 뒤를 돌았다. 충격과 고민에 빠진 채, 한국지엠 공장을 둘러싼 긴 벽을 따라 갈산역 방향으로 터벅터벅 걸었다. 계속 심각한 표정을 할 수도 없었다. ‘반짝이들’ 중 동행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다음 회차에 대한 기대를 늘어놓으며 들뜬 그에게, 거짓 호응은 하고 싶지 않았다. 

“근데 저는 다음 주에 나오는 건 고민이네요. 사실 작년처럼 마지막 회차 끝나고 전시 과제가 있는 줄 알았

거든요. 그래서 지각해도 출석은 꼭 했던 건데… 그냥 노는 거면…”

몇 주 동안 수십 번 반복되던 변덕과 무기력을 이긴 건, 작년 전시작에 대한 책임감 때문이었다. 그런데 올해는 전시가 없다는 걸, 불과 마지막 한 회차를 앞두고야 알게 된 것이다. 고작 남은 한 회차를 결석하는 것도 우스웠다. 갑자기 바뀐 목표와 계획들에 나는 스스로 설득할 만한 이유가 꼭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그런 내게 원하는 답을 해줄 수 있는 사람. 몇 주간의 여정을 이탈 없이 완주했다는 건, 그만큼 이 활동에 진심이었다는 것의 방증이기도 했으니까. 그 믿음은 틀리지 않았다.

“학교를 졸업하고, 이렇게 맘 편하게 아무 생각 없이 놀아본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그건 나도 3 회차 때 느꼈던 감정이었다. 그리고 그는 반짝수집단 활동의 주최 측인 두 작가님과 기획자님이 얼마나 겸손하게 우릴 이끌어가고 있는지도 속사포처럼 늘어놨다. 애초에 부채감만으로는 시작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엄밀히 따지면, 팬심이 먼저 작년 활동 중 생겼고, 부채감은 활동 끝에 생겼다. 애정 있는 대상들에게 진 빚. 그건 강력한 이유였다.

‘좋아하는데 무슨 이유가 더 필요해.’

문제는 내가 좋아하고 책임감과 부채감을 느끼는 대상이, 복숭아꽃 사람들만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네가 지금 놀고 있을 때야?’

결국 ‘그냥 노는 것’에 대한 부담은, 갈산역 개찰구에서 동행자와 헤어질 때까지도 정리되지 않았다. 며칠 밤을 지새웠다거나, 감기약을 먹었다거나 하는 특별한 이유가 여전히 필요했다. 수면 시간이 4 시간만 넘어도 사치스러운 건 아닌지 동동거리던 나였으니까. 여유와 사치 사이에서 팽팽한 수 싸움이 계속되는 동안, 전철이 도착했다.
훤한 전철 안에 앉았고, 창밖에는 컴컴함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전철의 안팎과 그 전시에서 봤던 것들이 비슷했다. 텅 빈 전철 내부에 앉아 모터타임즈에서 본 차를 만드는 틀이 떠올랐다. 컨베이어 벨트에 올라 차체가 되어 납작하게 눌려, 그 틀 안에 들어앉은 것 같았다.

‘좀 더 있고 싶어. 그 자리에.’

2%. 사진첩을 보려고 깨운 휴대폰의 배터리 잔량이었다. 꺼질 것 같은 휴대전화를 에코백에 던지듯 넣는데, 휴대폰이 종이 가운데에 꽂혔다. 모터타임즈에서 챙겨온 발행물 사이였다. 그 종이를 펼쳐들며, 나는 다시 모터타임즈 안을 기웃거렸다. 아카이빙의 과정과 이유는 물론이고 폭넓고 진솔한 이야기들까지. 그중 백미는 공장 노동자의 인터뷰들이었다. 그들의 깊은 시선을 빌린 공장의 풍경. 공정을 닮은 동료 간의 관계나 기계와 사람의 합을 맞추는 일까지, 그건 내가 놓친 것들이었다.

그 글은 그 공장에 전시됐던 기계와 부품들 내 앞으로 가져왔다. 그건 다시 그 전경으로 걸어 들어가는 듯했다. 컴컴한 공장의 바닥을 걷다 보면, 색칠된 곳들이 있었다. 그 색으로 사람이 걷는 길과 걸으면 안 되는 길을 구분했다. 제한공간이라고 적힌 노란색 네모 철판. 위험과 출입 금지를 알리는 안내판들. 분명 필요하지만 너무나 피로한. 거기서 피로하지 않은 건, 시간이 멈춘 달력뿐이었다. ‘세월천’을 지나 다시 들어간 공장, 천장에 있던 창문을 통해 들던 컴컴한 공장 안에 들어오던 빛. 들어오는 과정에서 색상을 입은 그 빛. 닮았다. 조도까지도.
빛이 드는 천창, 그 위로 스테인드글라스가 오버랩됐다. 무덥던 작년 여름, 철거 예정으로 폐허가 된 달동네 촬영 중에 만난 어느 폐가의 스테인드글라스.

“위잉 위이이잉 위이잉”

8 월 땡볕에도 달동네 꼭대기 비좁은 골목엔 음달이 있었다. 불볕더위까지 가릴 순 없는 그 낮은 그늘 속에서 모깃소리와 가려움에 정신이 들었다. 하지만, 멍청히 서서 현관 너머를 바라보는 것 외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컴컴한 가운데 들던 알록달록한 빛. 뷰파인더 너머로 한눈에 봐도 값비싼 유리 장식이 아니었다. 조금은 조잡해 보이는 스티커. 그 조잡함은 그걸 붙인 이의 여유를 말해주고 있었다. 넉넉하진 않은 주머니와 가장 소중한 공간에 대한 넉넉한 마음의 공존. 스티커로 알뜰살뜰 붙여 만든 스테인드글라스로 투과하는 빛에 저항 없이 카메라가 내려갔다. 정신 차려도, 카메라를 든 손이 미적거렸다.

‘스티커를 가지고 비탈길을 올라올 때, 현관을 들어올 때, 그 사람의 발소리는 어땠을까?’

그 집의 주인은 지금 어디에 있을지, 어떤 마음으로 스티커를 붙였고, 다 붙인 후 자신이 만든 작품을 어떤 표정으로 바라봤을지. 그게 내 발을, 빈 현관 앞에 꽉 묶어 뒀었다. 그렇게도 살뜰히 가꾼 이 집을 두고 나가야 했을 때 그 사람의 발걸음은 어땠을지 생각하니, 내가 들고 있는 카메라가 무거웠다. 남의 불행을 담는 사람 같아서, 부끄러움의 무게였다.

‘어땠을까.’

달동네에서 공장으로 장소가 바뀌었는데, 내 질문은 같았다. 대상이 어떠했는지. 다른 건, 상이 늘어났다는 것. 주인을 잃은 스테인드글라스와 천창, 그걸 투과한 터럭 같던 고운 빛. 전시에서 천창을 지나 우린 빛에 잠깐 머물렀었고, 그곳에서 일했던 사람들 몸에 새겨진 흉터 앞에선 멈춰 섰었다. 노동자들의 몸에 새겨진 흉터들, 그 사진들은 마치, 얼마나 어떠했는지에 대한 단서 같았다.

‘얼마나 아렸을까.’
“매일 여기서 일하고 나와서 이 하늘을 보는 사람들은 어땠을까, 무슨 생각을 했을까?”

레이어 여기저기 올려둔 나의 오디오들이 터지던 그 소란함을, 오후의 백인태 작가님의 오디오가 덮었다. 레이어 위에 임의로 올려뒀던 그의 오디오가 나의 것과 겹친 것이다. 그건, 우리가 모터타임즈 관람을 마치고 딱 공장을 빠져나오던 그 프레임쯤에 쌓여 있었다. 그땐 알아채지 못했던 절묘한 배치. 그게 내내 허공을 떠돌기만 했던 질문의 방향을 내게로 틀었다.

‘그래서 네가 보기엔 어떤데’

한국지엠 천장의 창문으로 들던 빛과 달동네의 스테인드글라스. 그 작은 틈으로 때론 낭만이 스몄을까 봐. 그 여린 단단함. 그게 혹여 사회의 차갑고 어두운 곳에서, 그들이 품었을 희망일까 봐. 나는 차마 함부로, 처절했고, 슬펐다. 처절함에 대한 슬픔은 어느 정도가 충분한 것일까. 얼마만큼이 충분한지 나는 알 겨를이 없다. 애초에 그 슬픔의 주체는 내가 아니었으므로. 다만 전이된 슬픔에 나는 내가 잡아먹히지 않을 만큼만 오래 슬퍼해 주고 싶었다.

“내 영상에서 조명을 써야 한다면, 가장 컴컴한 밤이면 좋겠어.”
“조명은 원래 어두울 때 쓰라고 있는 거잖아”
“그렇지!”

순간의 정적, 마주친 눈. 친한 동생에게 나는 가끔 내 영상의 포부를 늘어놓곤 했다. 그 중엔 가끔 내가 듣기에도 엉뚱한 것들이 있었다. 그럴 때마다 동생과 나는 빵 터지며 웃었다. 그때도 그랬다.

“뭐야 웃겨 진짜”
“아니 근데 진짜야. 난 세상의 주류가 아닌 존재들에게도 빛을 던지고 싶어.”
“아휴 이 언니 진짜! 네에~~ 어련하시겠어요? 그러세요~!”

어쩌면 그 바람마저 좁은 시선은 아니었을까. 매번 다른 곳으로 움직일 수 있었고, 값비싼 장비로 들여다봤으면서. 군부대 협조, 빠듯한 예산과 시간. 내가 고작 제약이라 여겼던 것들. 정작 제약이 그것들이었을까. 공장에 갇혀 일하던 사람들의 시선이 깊고 넓게 다져지는 동안, 프레임에 갇힌 줄도 몰랐던 나의 시선은. 그토록 과신하던 심미안은 내게 정말 있는 걸까.

사방을 쏘다니며 보고 듣는 나의 시선은 어째서인지 죽어있었다. 애도할 수 없는 슬픔. 납작해진 채 올려졌던 나는 전철에서 내려 또 다른 컨베이어 벨트로 옮겨졌다. 차체가 된 나는, 쨍한 백색등이 이어진 에스컬레이터 통로를 따라 지하철역 출구로 밀려 나왔다.

익숙한 까만 풍경에 박힌 알록달록한 산책로와 야경, 정속으로 달리는 노랗고 붉은 자동차 라이트. 자동차 공장이었다가 달동네였다가, 갈피 없이 공간 이동을 거듭하던 나의 의식이 모터타임즈 전시장으로 되감기 됐다. 자동차 공장 안에서, 반딧불이를 떠올렸던 그 전시작 앞에 다시 선 것이다.

반짝이는 조명, 내겐 그게 반딧불이 같았다. 그리고 그들은 반딧불이 같았다. 공장이 중단되고, 불이 꺼지고. 공장이 가동 중일 때도, 한 번도 꺼진 적 없던 이들. 잠시 그들이 놀러 온 것 같았다. 어두움이 인에 박혔을 그곳으로. 거기 치열한 그들이 있었고, 그곳을 나가서도 그들의 삶은 한 번도 꺼진 적이 없다고, 마치 공장이 한 번도 멈춘 적이 없었던 것처럼. 그들의 노동이 아름다운 빛이라거나 하는 예찬이 아니었다. 감히 고단함과 성실함을 가늠하기엔, 그들이 있었던 곳이 너무나 깊숙한 응달이었으므로. 

다만, 고단함 속에서도 꺼뜨린 적 없던 삶을 살아낸 존재들. 그 존재들과 치열했던 그들의 시간을 떠올릴 매개체. 박물관 한편에 잘 연출된 디오라마 같았다. 언젠가 나도 그런 디오라마를 만들 수 있을까. 아니, 언젠가 나도 어떤 디오라마 속에 반딧불이가 될 수 있을까

‘하’

허파에서 바람이 빠지듯, 공기 같은 웃음이 샜다. 씻고 나와 방 안에 앉아 들여다본 단톡방. 거긴 각자의 시선이 담긴 5 회차의 사진이 또 쌓여 있었다. 빛도 열기도 없던 그 추운 공장의 밥통을 사진첩에 저장했던 사람도 나 혼자가 아니었다.
진도 지역엔 ‘다시래기’라는 장례 풍속이 있다. 그것을 알게 된 건, 연극 다시라기에서였다. 어릴 적 그 연극을 보고 나오며 나는 배신감과 함께 찜찜함을 느꼈었다. 산 자를 위하는 거라니. 망자를 위해야 하는 장례에서 과연 그게 바람직한지를 고민했다. 그 땐 알고 싶지 않았다.
산 사람은 어떻게든 살아야 한다는 말은 슬픔이 메마른 사람들의 핑계 같았으니까. 그리고 십수 년도 훌쩍 지나버린 지금, 나는 다시라기가 말하고자 했던 정수, 삶의 진수를 이제야 이해할 것 같았다. 함께 울어주는 것도, 함께 웃어주는 것도 애도의 또 다른 형태라는 것도. 그 충분한 애도가 왜 위로이고, 왜 상실의 아픔을 겪고 있는 이들에게 꼭 필요했는지도.
충분한 애도를 통한 공감이자 일상의 회복을 돕는 공동체의 따뜻함, 사라진 끝에서 다시 시작한다는 그 마음까지도. 언젠가 더 넓고 깊어지면 다른 것도 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딱 내 그릇만큼 이해가 됐다. 

‘멈춰 있던 곳에서 다시 시작한다는 것’

모터타임즈에서 마음을 빼앗겼던 말이었다. 자려고 눈을 감고도 나는 그 말이 계속 떠올랐다. 멈췄던 공장에 모인 예술가들은 꺼졌던 불을 다시 켰다. 그리고 멈춘 공장에서 예술가들이 그랬듯, 반짝수집단은 내게 불을 켜줬다. 반짝수집단 이전까지 가동을 멈췄었던 텅 빈 내 공장에도 불이 꺼져 있었다. 내내 전시장을 회상할 때마다 포커스 아웃됐던 것들, 전시장을 함께 돌았던 사람들과 그 속에 있던 반짝수집단. 내내 무겁게 가라앉지도, 슬픔에 잠식되지도 않을 수 있던 까닭은 내 곁을 파고들던 그들이었다. 그건 그들이 들떠 있다거나, 아픔에 무감하단 말이 아니다. 오히려 적당한 슬픔. 전시작 중 노동자의 흉터를 기록한 사진 앞에서 나만큼이나 멈춰있던 발걸음 같은 것들이었다. 그 상처에 걸음을 멈추던 사람들. 내가 슬픔에 잠식되지 않을 수 있었던 건, 타인의 상처를 읽던 그들의 깊은 시선 덕이었다. 

‘사실 진짜 5 회차는 통닭집에서 시작된 거 아닐까?’

전기구이 통닭의 고소한 냄새, 매콤하고 뜨끈했던 닭볶음탕의 떡 사리. 그리고 그들을 바라보며 떠올리던 한낮의 설경, 그 새하얀 추위까지도.

‘한 번 더, 같이 놀고 싶어’

아무 생각 없이, 좋은 사람들과 깔깔대며. 정말 순수하게, 어떤 부담 없이 다시 한번 놀고 싶어졌다. 울고 싶던 여름밤마다 먼 창후항으로 향하던 길이, 그 포구가 떠올랐다. 그건 사치스러운 순간이 아니라 꼭 필요한 순간이었다. 혼자 울 곳이 필요한데, 같이 웃을 곳은 왜 필요하지 않겠냐며 마침내 스스로를 설득한 것이다. 6 회차의 장소인 신기 시장 주차장을 검색했다.

‘마지막 회차도 차를 놓고 가야 하나.’



6회차 | 등대 : 예술가의 공간 속 늑대 인간, 신기시장, 설거지.



“엄마 나 점심에 놀러 갔다 올게요!!”

엄마만 콕 짚어서 말하는 것 같았지만, 거실 한 귀퉁이에 있는 선인장도 웃을 만큼 비장한 선전포고. 웃지 못할 그 결연함과 한껏 올라간 목청에 엄마는 물론 아빠까지 내게 시선 집중이었다. 제발 좀 그러라며 이어지던 엄마의 잔소리에는 기대가 한가득이었다. 그게 나를 멈칫하게 했다.

‘이런다고??’

놀러 나가는 건 난데, 나보다 더 기대에 찬 엄마 목소리에 눈을 야단스레 깜빡거렸다. 나의 유흥을 지나치게 반기는 집안 분위기가 딱히 이해되진 않았지만, 눈만 끔뻑이며 서 있을 수는 없었다. 그 기대에 부응하고자 해야 할 일들을 몇 배속으로 처리했다. 그래봐야 이비인후과에서 결국 시간을 다 까먹었지만.

‘아니, 나 지각 인생 안 살고 싶은데 진짜로’

결국 차를 끌기로 했다. 신기시장 주차난의 악몽이 떠올라 피하고 싶은 선택지였지만, 정체 구간에서 길어진 시간을 만회하려면 달리 방법이 없었다. 물론, 이미 만회는 늦었지만.

“빈자리가 있는데 왜 대질 못하니~”

나도 모르게 혼잣말이 튀어나왔다. 두 바퀴, 세 바퀴. 누가 봐도 새 주차장, 거기 주차된 건 고작 두 대. 근데 입구가 막혀 있었다. 입꼬리와 광대에 머물던 힘이 미간으로 옮겨갔다. 결국 왜 돌았는지 무색하게 처음 봤던 곳에 주차를 하고, 오늘의 행선지 ‘예술가의 공간’으로 향했다. 신기시장 근처를 수없이 지나면서도 한 번도 발 들인 적 없던 오래된 골목. 그 골목을 가로지르면서, 역시나 한 번도 본 적 없던 시장 옆 높게 솟은 새 아파트는 너무 낯설었다.  그 낯선 풍경이 주차장에 매여 있던 감정을 쉽게 압도한 건지, 잔뜩 들어갔던 미간의 힘이 풀렸다. 내게 낯선 곳들을 걷는 건, 늦여름 석양 직전의 인적 없는 해변을 걷는 것 같다. 수평선 위로 바다를 닮은 주황이 붉게 타고, 청빛 계열부터 연보랏빛까지 물드는 하늘, 그 빛이 묻은 청록의 바다. 너무 고요해서 파도에 부딪히는 몽돌 소리가 울리고, 모래 사이로 드나드는 물소리마저 간지러운. 그 새로운 자극이, 모든 감각을 예민하게 만드는.
익숙한 곳에서 걷는 낯섦, 그걸 만끽하기에 좋은 건물들. 그것들을 지나 만난, 가을 낙엽이 수채화 같던 작은 공원. 귀여운 공원 풍경에 마음을 빼앗겨 동그래진 눈이, 거기 앉아 계신 어르신의 눈과 마주쳤다. 피할지 고민할 틈도 없이 초승달로 휘어지던 마주한 눈매의 다정함은 어릴 적 봤던 만화였다. 다시 예열되던 나의 감정은 곧 펼쳐진 풍경에 다시 집을 나설 때와 비슷한 온도를 되찾았다.미리 찾아본 로드뷰 속에서 마음을 빼앗은 그 풍경, 세로줄 무늬 차양이 드리워진 작고 귀여운 오래된 슈퍼, 그 옆에 예술가의 공간이 있었다.

“안녕하세요!”

흐름을 깰까 긴장하며 들어간 것 치곤 씩씩한 인사였다. 문을 열자마자 커다란 테이블로 꽉 찬 공간, 거기 옹기종기 앉아 있던 단원들. 5 회차 때 오석근 작가님이 ‘우리 반짝이들’이라고 붙였던 별칭이 다시 떠올랐다. 동그란 눈들이 초승달처럼 휘어지면서, 마지막 날까지 늦어버린 나를 반겨줬다. 모르는 사람은 둘. 청년 예술가와 인천문화재단 관계자. 청년 예술가는 그 공간 협찬의 장본인이었다. 인천문화재단 관계자분은 아마도 우리 모임의 후원단체에서 시찰 나온 파견인 내지 대리인. 물론 결국 인생을 건 그 테이블 위에서의 시간은, 그런 구별이 조금도 중요하지 않았지만.

“저는 선량한 주민이에요!”

벌써 두 번째 판의 자기소개였다. 첫판에서는 ‘시민’이라고 했지만, 이번 판은 카드에 적힌 그대로 나를 소개했다. 전략 차이. 첫판에선 시민이라고 소개한 건, 정체를 숨기려는 전략이었다. 뒤집어 생각하면, 그건 타인의 정체에 대한 내가 쥔 힌트. 모두가 시민이라고 주장할 때, 주민이란 말을 처음으로 꺼낸 이는 주민 같았다. 주민이라는 상세한 정보가 익숙하지 않은 첫판이었으니까. 같은 이유로 맨 처음 시민이라는 말을 꺼낸 이는, 주민 카드를 받지 않은 거라 짐작됐었다. 늑대인간과 주민, 심리전으로 둘 중 더 많이 살아남는 쪽이 이기는 게임. 카드라는 도구만 늘었을 뿐, 마피아게임과 비슷했다. 처음부터 자기가 문제적 인간이 아닌 보통의 인간임을 어필하는 것조차,  묘하게 현실 같던 점도. 치열한 전략을 짜며 준비하던 내게, 첫판처럼 별다른 능력이 없는 ‘주민’이라는 카드를 또 받은 건 김이 샜다. 하지만 기막힌 능력이 없다고, 할 일이 없는 건 아니었다. 공공의 적, 늑대인간을 제거하는 것. 주민인 나로서는 천리안은 보호 대상, 늑대인간은 제거 대상이었다. 물론 시작부터 늑대인간들에게 제거된다는 변수는 예상 못 했지만.

몇 주간 가까워졌지만, 우리는 서로의 표정에서 진위여부를 가릴 만큼 데이터가 쌓인 사이가 아니었다. 그건 약점이자 강점이었다. 서로의 패턴을 들키지 않고 읽혀줄 일관된 감정의 표면, 포커페이스를 만드는 게 나의 두 번째 판의 목표였다. 그래야 세 번째 판 이후에 이길 수 있다는 나의 청사진. 마지막에 웃어야 진짜 웃는 것이라는 습관 같은 평소 생각은 승부욕에 불을 지폈다.

“아 진짜! 나 진짜 아니라고!”

승부욕에 불탄 건 나만이 아니었다. 망자는 말할 수 없다는 규칙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간절한 욕구를 보면 힌트라도 주고 싶어서 입이 간지러웠다. 게임에 잔존할 땐, 내내 클로즈업이었던 화면이 풀샷으로 바뀌었다. 죽을까 싶은 걱정과 늑대인간을 가려내려는 목적이 사라진 것이다. 상대가 초면이든 어디 관계자든 중요하지 않았다. 초면이어도 쥔 패에 따라 아군과 적군이 될 수 있었고, 소리치며 주장하는 건 이미 각자의 계급장이 떼진 상태였다. 모두 각자가 늑대인간이 아님을 강하게 어필했다. 자신의 결백함, 혹은 무해함을 주장하는 데에는 모두가 진심이었다. 그 주장의 진위 여부를 떠나서, 진짜 주어진 삶을 그저 열심히 살아내는 것처럼 보일 만큼. 죽은 자는 말이 없단 것도 꼭 실제 같았다.

카드에 주어진 인생을 자기 인생처럼 펼치는 명연기로 점점 과열되는 공기. 죽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는 게임 앞에서 삶의 진정성을 되짚는 건, 망자(亡者)의 특권이었다. 

“제가 그러면 헹구는 걸 할게요!”

뽀글이 재질을 좋아하는 그녀가 또 나를 챙기러 왔다. 승리감과 성취감에 도취해 혼자 설거지를 하고 있었기에, 거절해 봤지만 그녀는 몇 번이고 손을 걷어붙였다. 내가 스스로에게 준 벌이자 상이었는데, 그녀의 출연으로 그건 개선식이 되었다. 신기시장에서 사 온 것들로 벌인 잔칫상 덕에 설거짓거리가 쌓여 있었다. 마지막 판은 이긴 사람이 설거지하기로 했고, 나는 온갖 권모술수로 혼자 살아남았다. 
그 내기가 덧붙은 것이, 살아남는 것에 진심이었던 모두에게 전략을 바꾼 계기가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확실히 마지막 판은 이기고 싶었다. 그게 내 계획이었으니까. 늑대인간은 나까지 2 명이었는데, 나는 처음부터 늑대인간을 제거했었다. 무리수일 수도 있었지만, 비정하게 동족을 제거했다. 목적 달성을 위해서. 모두가 처음부터 늑대인간이 누군지 정확하게 의심하고 있는 마당에 그녀를 살려두는 것이 오히려 방해될 것 같았다. 그러고는 의심받지 않기 위해서, 모두가 의심하던 사람부터 하나씩 자연스럽게 제거했다. 살아남은 사람은 두 명이었다. 한 명은 뒤늦게 나를 의심하는 뽀글이 그녀, 다른 한 명은 천리안으로 활약했던 나의 죽음에 가장 멋진 애도를 붙였던 이전 사회자였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그 둘은 나의 경건한 설거지 의식에도 참여를 시도했던 인물들이었다.

“네. 천리안은 죽었지만, 이번 천리안은 신이 들렸는지 늑대 인간 두 명을 정확히 지목했었습니다.”

사회자이자 참여자였던 단원은, 늑대인간들에게 제거된 내게 그런 표현을 붙였었다. 때마침, 나 역시 신들린 촉에도 불구하고 한순간에 제거된 것이 아쉽다고 생각하던 상황이었다. 씁쓸한 나의 죽음에 애도를 붙인 느낌. 그냥 게임을 하던 것뿐이었는데 나는 갑자기 내 묘비 앞에 선 느낌이었다. 내가 죽으면 차가운 묘비엔 무엇을 새길까를 고민한 적이 있었다. 고맙다는 말을 새길지, 좌우명을 새길지. 내 묘비를 찾을 이들에게, 고맙다는 말은 너무 다정해서 폭력적이었고, 좌우명은 절망적일 것 같았다.

‘뿌린 만큼 거두기를’

경우에 따라선 저주, 어디까지나 내게는 축복인 그 말. 그건 언제 또 바뀔지 모를 나의 좌우명이었다. 내 좌우명은 벌써 두 번이나 바뀐 것이므로. 첫 번째 좌우명은 ‘한 번뿐인 인생, 후회하지 말자’. 삶의 유한함 앞에서 그보다 간결한 다짐은 없었다. 하지만 매번 최선을 다해도 후회는 남았다. 쿨하지 못한 내게, 후회하지 않기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렇게 바뀐 두 번째 좌우명은 ‘죽는 날까지 한 점 부끄럼 없기를’. 너무 맑아서, 그래서 더 매서운 문장이었다.

짙은 군청색 밤하늘의 새하얀 별. 설령 닿을 수 없대도, 첫 번째 좌우명처럼 쉽게 바꾸지는 않았다. 영원히 괴로워하더라도, 영원히 지키기 어려운 다짐이더라도. 그건 꼭 지키고 싶었다. 그리고 꽤 오래 지탱해 왔다. 좌우명도, 내 삶도. 내가 많이 어긋나거나 삶의 경계선 밖으로 내 신발의 앞코를 걸쳤을 때도, 그래서 더는 디딜 곳이 없다고 생각할 때조차도. 그 말은 나를 세상안으로 등 떠밀어 주는 맑은 정신이었고, 삶의 안쪽으로 다시 돌아오게 할 존재들과 나를 이어줄 ‘영매’였다.

“야 너는 살풀이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니냐?”

다른 친구에게도 자주 들었던 말이라 큰 감흥은 없었다. 요행 없는 성실 속에서도, ‘하필’ 벌어지는 일이 많았다. 그건 누구의 인생이든 그렇겠지만. 내 불행의 고과를 친구들은 그렇게 매겼었다. ‘유독’. 그게 나를 더 독하게 만든 것일까. 그 유독이란 건, 영원할 것만 같았던 좌우명을 다시 바꾼 장본인이었다. 유독에 독이 들어 그런 것인지, 아니면 인생에서 고배를 너무 연이어 들이킨 탓인지 모르겠지만. 

“뭐 빌었어?”
“비밀이야”

광장에서 불꽃이 터지고 있었고, 지인은 물었다. 새해 소원을 언젠가부터 빌지 않았지만, 그날은 꼭 빌어야 할 것 같았다. 내 주위 모두가 그러고 있었으니까. 그게 내 마지막 연말 모임이었다. 이듬해부터 새해 소원을 내게 빌기 시작했다. 단단하기를. 그저 버티고 지나가 주기를. 그게 전부였다. 삶보다 감정이 흔들리는 것이 더 참기 어려웠다. 감정이 흔들리면 내가 흐트러지는 거니까. 삶 역시 나의 일부라고 해도, 흔들리지 않는 뿌리는 내 가장 깊숙한 곳에 있어야 한다고 믿어왔다. 그러고 보니 삶을 흔드는 바람보다 수도 없이 흔든 건, 혹시나 나를 잃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이었다. 그리고 머지않아 새해 인사도 하지 않기로 한 어느 해였다. 악순환. 새해 복을 많이 받으라는 말을 하자니 우스웠고, 듣자니 버거운 것을 남에게 하기도 우스웠기 때문이다. 생일 축하나 행복을 비는 인사는 모두 감사한 축복이었지만, 유독 새해 복을 받으라는 그 말만큼은, 끌어 쓴 적 없는 사채 같았다. 감당 불가한 이자, 담보는 나 자신인. 생일 축하는 그 자리에서 한 끼 대접이나, 또는 돌아올 상대의 생일 선물로 충분히 보답할 수 있었다. 또 행복은 나를 둘러싼 사소한 순간에도 많았고, 생각에 따라 발견 가능한 온전한 나의 영역이었다. 만에 하나 현재 행복하지 않다고 해도 잠시 미뤄도 되는 것들. 

하지만 새해 복은 달랐다. 그 해의 어느 시점에 꼭 받아야 할 것 같았다. 특히 한 글자 차이라지만, 행복과 복이 그 둘의 무게 차는 현저했다. 복을 많이 받으라는 건, 행복보다는 행운을 빌어주는 것으로 들렸기 때문이다. 그 말 뒤에 새해에는 원하는 걸 다 이루라며 붙던 덕담들이 나의 해석을 더 좁혔다. 더 노력했다면 쥘 수 있었을 행운을 나의 불성실과 무능으로 놓친 자책과 미안함. 새해 복이라는 말 앞에 지어본 적도 없으면서, 매번 농사꾼이 됐다. 아무리 뙤약볕에 성실히 밭을 갈아도, 비와 바람은 내 몫이 아니었다. 나로서는 어쩔수 없던 행운.

빚지곤 못 살던 성격인 내겐 참을 수 없는 부채였다. 말에도 빚이 있다는 나로서는, 누군가와 나눈 말은 꼭 지켜야만 할 것 같았으니까. 그게 새해 복마저 예외는 아니었다. 그냥 받자니 끝내 짓누르던, 누군가 빌어준 복 값. 도착한 말을 거절하며 물리자니 돌려줄 형체도 없었다.나는 받은 말을 두 손에 들고 서 있었다.

“야, 너는 왜 나한테 먼저 새해 복을 받으란 이야기를 안 해? 난 좀 서운하다.”
“어 그랬나? 새해 복 많이 받아!”

나의 좁은 해석과 좁아진 마음에 일격을 가하는 친구에게 시시콜콜 다 말할 수는 없었다. 대신에 나는 우스운 인사를 했다. 그게 얼마나 그 친구에게 영험한 주술인지 모르겠지만. 사람들에게는 내 생각과 관계없이 각자의 부적이 필요할 수도 있으니까.
그 뒤로 먼저 하지 않아도, 누군가에게 축원이 오면, 새해맞이 굿을 하는 것처럼 전통 의식처럼 인사치레를 했다. 새해맞이 굿. 뿌린 만큼만 거두길 바라는 나로서는 노력으로 얻어야 할 것들 앞에서 이해할 수 없던 그 의식을 이해하게 된 계기도 영상 작업이었다. 가까이는 세어도의 당재, 멀게는 연평도의 충민사를 돌며 나는 민속신앙 뒤에 뱃사람들의 숙명이 숨어 있음을 발견하고 울컥하던 때야 비로소 깨달았었다. 그들의 통제 영역 밖임을 알지만 그래서 더 빌어주고 싶고 그것 외엔 할 수 없기에, 기어이 복이 소중한 이에게 찾아 들면 좋겠다 인사하는 그 마음을. 그때 가까이 있던 사람들의 그 마음은 정작 왜 헤아리지 못했을까.

‘놓칠 수 있는 마음’

그리고 아는 것과 행하는 건 다르듯, 몇 번을 말려도 옆에 딱 붙어서 설거지를 돕는 이 마음을 살피는 것도 나는 여전히 서툴다. 나의 잔혹했던 승리사와 스스로 선택한 상벌에만 도취해서는.

“결벽증이 있어서 혼자 하는 걸 좋아해요.”

마음과 달리 말은 엇나갔다. 고마운 상황이나, 고마워하는 마음을 마주하는 상황 같은 것을 마주하면 촌스럽게 얼어붙어 버린다. 혹시 물이 차진 않을까, 나의 느린 손과 결벽증적인 습관 때문에 그녀를 고생시키는 것 같아서 미안했다. 하지만 몇 번이고 밀어내도 옆에 딱 붙어서 헹구고 있는, 그 다정함이 고맙기도 하고. 그 마음을 나열하기에 적당한 말은 고맙다는 한마디면 됐는데, 쑥스러워서 적당히 둘러댄 말이 고작 그거였다.

“안녕히 가세요!!”

상황적 아이러니. 카드 뒤에서 펼쳐진, 속고 속이는 인생 게임. 삶의 순수한 본질을 꿰뚫는 예술가의 공간에서, 우리는 살아남기 위해 기만과 권모술수를 서슴지 않았다. 승부욕에 눈먼 세속적 욕망과 서로를 제거하는 비정함, 그리고 폴라로이드를 나누던 따뜻함이 교차하는 모순적인 풍경. 그것들을 내쫓지 않고 참아준 예술가의 공간. 6 회차의 공기는 무례하다 싶을 정도로 뜨겁고 짜릿했다. 그 끝에 인생에 대한 단단한 태도를 다질 수 있었던 것도. 

우리의 뜨거웠던 시간에, 멀어지는 그들의 뒷모습을 담으며 내가 뱉은 대사는 안녕히 가시라는 것이었다. 내 인사에 맞춰 사람들은 친절히 뒤를 돌아 인사를 했다. 그건, 내가 마주 보고 찍는 몇 안 되는 장면이기도 했다. 활동 내내 쑥스럽기도 하고, 혹여 찍히는 게 싫진 않을지, 실례가 되진 않을지 고민하느라 앞보다는 뒤를 택했었으니까.

“손 한 번만 흔들어주세요”

나의 요청에 미처 돌아보지 못했던 사람들까지 알아채고 뒤돌아 곧바로 손을 흔들어주던 모습. 그리고 드문드문 들어온 불빛도 있었지만, 밤이 내려 앉았던 골목. 딱 적당한 어둠 속으로 사라지던 반짝수집단의 뒷모습.
낮에 몇 번을 맴돌다 자리 잡았던 공영 주차장. 운전석에 앉아서 백인태 작가님께 사인받아온 책을 내려다봤다. 잘 연출된 강렬함. 화려한 색상들을 여러 가지로 쓰면 촌스럽다는 개념만 공식처럼 외워 왔던 내게, 그 얕은 공식조차 무력하게 만드는 세련됨에 신묘한 지점이었다. 해학과 풍자, 그 속에 담긴 날카로운 통찰이 재밌는 그의 책. 몇 주 동안 봤던 그와 묘하게 닮아 보였다. 그런 책의 제일 첫 장에 놓인 친필 사인이라니. 작가님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내 생각은 어떤 색으로 전해야 촌스럽지 않을지 고민하곤 했었다. 그제야 새삼 잊었던 것들이 떠올랐다. 생각해 보면 그게 내가 조심했던 전부였다. 엘리트 같은 예술인들 사이에서 했던 조심이라곤. 긴장했던 순간들도 있었다. 회차의 중간중간, 그리고 마무리할 때마다 오석근 작가님은 찍었던 폴라로이드를 유심히 들여다보셨다. 긴장되던 그 잠깐의 정적 끝에는 늘 칭찬이 돌아왔다. 그건 사진 속 문제점보다는 일말의 가능성을 찾아 건네는 응원 같아 특별했다. 조언이 필요할 때는 너무나 쉽게, 내가 헤매던 원인을 짚는 프로의 시선을 빌려주셨으니까. 별 볼 일 없는 샷이 고민이던 나는, 자책 없이도 더 많은 장면을 고민할 수 있었다. 
허름한 수제화 가게 진열대에서도 눈을 떼지 못하고 칭찬할 구석을 집어내는 그 심미안으로 여백을 두고 간결하게 핵심을 찔러주던 고경표 기획자님. 그녀를 통해서는 냉기와 온기 사이의 적절한 거리를 가늠하는 법이라든가, 복잡한 생각을 정리하고 중요한 게 무엇인지 묻는 법을 흉내 내곤 했다.

잘남보다는 빛남을 더 자주 마주했던 시간들. 그건 분명 이 프로젝트를 잘 이끌어준 복숭아꽃 사람들과 매번 진심으로 그 시간을 즐겨준 사람들이 아니었다면 어렵지 않았을까. 내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들과 함께하고 있었는지도 잊을 만큼, 멋진 사람들과 함께였다는 유치한 소감이 자연스러울 만큼. 그러고 보니 몇 주간이 꿈같았다. 주차장 주변에 늘어선 가로등마저도 나를 깊은 몽환으로 끌어들이는 것만 같았다. 벌써부터 그리워져 들어간 사진첩, 우리의 시공을 하나씩 밀어 넘기던 손이 멈췄다. 신기시장에서.

“자!”

게임을 잠시 멈추고 장을 보기 위해 일어나자마자 피로감이 몰려올 때였다. 사람 좋은 웃음으로 오석근 작가님이 내민 폴라로이드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었다. 그 잠깐 사이에 지난 회차들이 스쳤기 때문이다. 이 정도면, 폴라로이드를 하나 장만해야 할 것 같았다. 부적 삼아서.

‘신기시장’

하필 이름까지도 신기시장. 신기촌에 있는 시장이므로, 신기(新基)는 새로운 터전이라는 뜻이겠지만, 폴라로이드라는 부적을 들고 있던 나는 그 대목에서 신기(神氣)라는 말이 떠올랐다. 시장의 작은 입구에서, 신기한 우연으로 들어가고 있는 사람들을 놓치지 않고 폴라로이드에 담았다. 우리가 마지막으로 함께 했던 시공을, 폴라로이드 사진에 남길 기회가 내게 다시 한번 주어졌던 것이다.

신기 시장 내부를 돌아다니며, 먹거리를 사는 건 처음이었다. 기껏해야 신기 시장 옆 대로변 횟집에서 회를 포장했던 기억이 전부인 내가 그 안에 서 있는 건, 상상한 적 없는 그림이었다. 모래를 빠져나오던 파도 소리를 닮은 달궈지는 기름 소리. 가게마다 켜둔, 크고 작은 동그란 조명들. 기름에 단련된 부침개와 튀김 냄새. 낯선 사람들 틈새에서, 적당한 거리인 이들과 함께 먹거리를 고르던 시간. 낭만. 그 와중에 내 마음을 형상화한 것 같던 하트 모양의 김치부침개마저도. 

‘거 한 번 살아보겠다고. 참나. 예술가의 공간에서 속고 속이던 내 인생이 레전드네.’

차 안이라서 다행이었다. 무의식이 쏟아낸 나의 하루 평에 실소가 터졌기 때문이다. 사진첩을 넘기던 손가락이 슈퍼와 나란히 있는 예술가의 공간 사진에 멈추자마자, 튀어나온 진심. 가식은 지치게 해도 진심은 미치게 하는 힘이 있으니까 뭐. 사방이 더 컴컴해진 주차장에 앉아서, 바라본 가로등. 그걸 보고 있자니 빛이 듬성듬성한 골목으로 사라지던 그들의 모습이 다시 보고 싶어졌다. 마지막 영상을 재생하고 한참 동안 내 눈은 화면에 멈춰 있었다. 그리고 우리였던 그들 위에 등대가 오버랩됐다. 6 주간 내가 ‘우리 반짝이들’로 존재했던, 반짝수집단. 그 안에서 수많은 반짝을 모은 것도 좋았지만, 밖으로 나와서도 그것들이 반짝 사라지지 않는다는 건 더 큰 수확이었다.

언젠가 또 잊을지 모를 나의 반짝임을 잃지 않기 위해 꼭 필요한 것. 삶에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을 때조차, 스스로에게 ‘어떻게’라는 길을 찾아주려는 시도와 태도. 속 깊은 예술인들 곁에서 깨달은 건, 그것들이었다.  삶의 프레임, 샷 사이즈를 바꿔보면서. 균형을 잃었었다. 한쪽만 오래 고민하느라 한쪽을 살피지 못하는 일이 잦았다. 그게 문제가 된다고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내겐 그런 여유가 없었으니까. 적당한 책임감과 적당한 호의, 내가 좋아하는 것과 좋아했던 것들. 그런 것들 속에서 인천의 반짝이는 곳들을 돌아다녔다. 사람들을 관찰하면서 나는 나를 관찰하기도 했고, 나를 기록하면서 사람들을 기록하기도 했다. 그 과정은 내가 해왔던 것들과 다르지 않았지만, 내가 가진 렌즈들이 달라져 있었다. 무해한 사람들과 여유 있는 시간, 결을 느낄 수 있는 그 넉넉한 마음들. 그 덕분에 나는 내게 어떤 문제가 있는지, 또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살피며 어떻게 해 나갈지를 고민할 수 있었다. 한 발짝도 내디딜 수 없는 컴컴함 속에서 길을 헤매던 때, 어쩌다 들어가게 된 곳. 그곳이 다행히 속이 깊은 사람들의 동굴이었다.

동굴 안에는 그 동굴의 주인들이 켜둔 불이 있었다. 그건 춥고 어두운 나의 밤에 온기였고, 빛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동굴의 가장 어슴푸레한 곳에서 숨어 있었다. 들키지 않고 적당한 온기와 냉기가 있는 곳. 거기서 나는 무척 긴 밤을 지나온 느낌이었다.

동굴 안은 아주 작은 소리도 울린다. 나의 작은 목소리도 내게 되돌아왔다. 온전히 나의 목소리를 듣고, 또 타인의 목소리도 노력 없이 크게 울렸다. 그건 그 동굴에서 가장 재미있는 것이었다. 고드름에 맺힌 물이 동굴 한편의 물웅덩이 위로 떨어지는 소리도, 굴 입구를 맴도는 정체 모를 것들의 기척도, 모두 동굴에서는 크게 들렸다. 그 소리는 나를 지킬 파수꾼이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동굴 안의 불은 좀처럼 사위어가지 않았고, 어슴푸레하던 곳까지 푸른빛이 스몄다. 길을 잃었던 내게 가장 안락하고 안전했던 동굴을 나왔다. 동이 트고 있었으므로. 동굴을 뒤로하고 나오는 마음은 고마움, 또 아쉬움. 그리고 앞에 마주한 것들.

여전히 나는 따뜻하고 차가운 이중성을 지닌 불완전한 존재라고 하더라도. 삶의 어느 순간, 가동이 중단된 공장처럼, 또다시 나의 불이 모두 꺼진대도. 있는 자리에서 주저하면서도 걷고, 멈춰있더라도 더 많은 것들을 보고, 더 다양한 것들을 느끼기로. 그래서 종국엔 나만의 뾰족함으로 나의 도시를 지켜가기로.

인생은 망망대해 같다던 말이 기억났다. 인생, 삶이 망망대해라면 나의 어두운 밤바다에는

반짝수집단이 있었다. 여전히 내 새해 소원은 내가 단단해지는 것이지만, 여전히 내 삶은 영매가 필요한 순간들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2025 년 나의 혼문(魂門)이었던, 반짝수집단.

“어두운 밤들을 함께 했던 반짝수집단, 안녕.”